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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구야, 이 길이 아닌가봐

등록 2006-09-21 19:18수정 2006-09-22 13:45

낙원을 팝니다<br>
칼 N. 맥대니얼, 존 M. 고디 지음. 이섬민 옮김. 여름언덕 펴냄. 9800원
낙원을 팝니다
칼 N. 맥대니얼, 존 M. 고디 지음. 이섬민 옮김. 여름언덕 펴냄. 9800원
수천년 자급자족했던 남태평양 ‘유쾌한 섬’ 나우루
‘오래된 미래’ 대신 인광석 채굴을 선택한 그들
불과 수십년 만에 글로벌 자본의 노예가 됐다
시장경제가 자행하는 지구의 미래에 대한 우화
하와이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중간, 적도 바로 아래 위치한 둘레 20㎞가 채 안되는 섬 나우루, 이곳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우루 이야기는 힘, 개발, 탐욕, 눈앞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팔아버린 이야기다. 우리 자신의 과거이면서, 우리의 미래가 될 가능성도 있는 이야기다.”

수백만 년 전, 태평양에 솟아오른 외딴 화산은 잠겼다 솟기를 거듭하는 동안 해양퇴적물과 새똥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섬 지하에는 풍부한 자원이 생겼다. 바로 인광석이다. 하지만 인간이 발을 들여놓은 2천년 동안은 땅 밑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 강한 적도 해류 탓에 나우루 사람들은 바다로 나가기 힘들었다. 서구인도 작고 먼 외딴 섬에 손길을 뻗칠 이유가 없었다. 나우루 섬의 삶은 자연스레 외부와의 교역이 없는 자급자족 생활이었다. 가뭄에 시달리는 것만 빼고는 안정된 삶이었다. 과일 수액으로 버텨야 하는 건기는 가혹했지만 자그만 섬에 인구 천 명이 넘지 않도록 조절하는 구실을 했다. 부족한 생물자원에 적정한 ‘맞춤 인구’를 유지하는 자연의 조정자였던 셈이다. 가뭄이 심할 때가 아니면 생계유지에 어려움이 없었기에 나우루에는 축제와 노래와 놀이가 넘쳐났다. 1798년 서구의 한 포경선 선장은 이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유쾌한 섬’이라 불렀다.

가뭄으로 인해 인구 적정선 유지

남태평양의 산호섬인 나우루 섬의 풍광을 그린 그림. 수천 년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던 이 섬은 인광석 채광으로 황폐화해 수십년 사이에 생물이 죽어가는 산호무덤으로 변했다. 여름언덕 제공
남태평양의 산호섬인 나우루 섬의 풍광을 그린 그림. 수천 년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던 이 섬은 인광석 채광으로 황폐화해 수십년 사이에 생물이 죽어가는 산호무덤으로 변했다. 여름언덕 제공
‘유쾌한 섬’에 그림자가 드리운 건 ‘비치코머’라는 부랑자들이 섬으로 흘러들어오면서다. 주민들은 돼지와 코코야자를 철제 도구, 무기, 알코올, 담배 등 서구 문물과 바꾸기 시작했다. 교환가치로써 화폐 개념도 알게 됐다. 시큼한 발효음료에 빠진 섬사람들은 취하기 시작했고 총을 소지하면서 전쟁이 일어났다. 죽음은 또 다른 죽음을 부르고 분쟁은 해소되지 않았다. 내전은 식민 제국에게 빌미를 줬다. 독일은 1888년 무기 금지 조처를 내리며 나우루 통치를 선언했다. 총은 거두어졌지만 수천 년간 지속된 섬의 자결권은 불과 수십 년 만에 날아가 버렸다. 전통 사회에서는 필요치 않았던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금전적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돈이 필요했다. 신화가 사라져갔다. 밀려들어온 기독교는 나우루의 전통 옷차림과 전통 관습을 일일이 간섭하며 ‘개선’의 열의를 불태웠다. 섬의 운명을 바꾼 가장 결정적이었던 사건은 1896년 인광석의 발견이었다.

어마어마한 인광석 광산이 발견되자 나우루는 “남태평양의 가장 부유한 섬”이 됐다. ‘가장 부유한’이란 수사의 메아리는 서구식 소비문화의 노예가 된 것에 다름 아니다. 나우루 회중교회의 제임스 에인기미어 목사의 개탄을 들어보자. “인광석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나우루가 이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어릴 적의 나우루는 정말 아름다웠다. 나무들이 있었다. 사방이 푸르렀고, 싱싱한 코코야자와 빵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었다. 그 뒤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인광석 채광이 시작된 후 나우루의 문화는 기독교의 유입, 1차 대전, 국제연맹 신탁통치, 2차 대전, 일본의 강점에 따른 주민 추방, 국제연합 신탁통치로 이어지는 수난을 당하며 세계시장으로 떠밀려갔다. 1968년, 섬사람들은 독립을 맞는다. 80여 년간 지속된 서구의 강점에서 벗어난 순간 그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인광석 산업을 접고 섬의 생물 다양성 복원 계획을 수립하고 나우루의 자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인구를 억제해야 하는가? 아니면, 인광석이 고갈될 때까지 계속 채굴하고 세계 경제에 동참해 여력이 되는한 수입하고 외부에서 사들인 자원을 이용해 인구가 계속 성장하도록 해야 하는가?

1998년 인광석 채광지를 그린 모습.
1998년 인광석 채광지를 그린 모습.
나우루는 후자의 길을 갔다. “인간의 경제는 자연계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경제학자 허먼 데일리의 말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나우루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채굴로 땅은 마구 파헤쳐졌다. 태양에 노출된 산호 무덤들은 너무 뜨거워졌다. 생물들은 죽어갔고 흉물스런 폐광만이 남았다. 지속가능한 열대의 낙원을 팔아버린 대가는 늘어가는 불모지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나우루는 가장 비만한 나라, 당뇨병을 앓는 나라가 됐다. 왜일까? 고작 18㎞의 도로 하나뿐인데도 주민들은 집집마다 차를 한 대씩 굴릴 정도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기 때문일까? 식생활이 생선과 과일에서 스팸과 통조림, 맥주로 바뀌었기 때문일까? 유전학적인 이유가 있다. 식량이 부족했던 섬의 여건상 나우루인들은 쉽게 살이 찌게끔 적응해 왔는데 갑작스런 풍요가 비만을 ‘선물’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체제에 편입된 1만명의 주민들이 당장의 생존마저도 외부 세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은 더 끔찍한 비극이다.

낙원을 팔아버린 대가, 당뇨병

이제 나우루의 이야기에서 빠져 나오자. 나우루라는 항에 우주의 작은 섬 지구를 대입해 보자. 시장 경제 체제가 지구를 상대로 자행하고 있는 비극이 보이는가. 지속 불가능한 파괴의 길을 돌아보는 우화, <낙원을 팝니다>(여름언덕 펴냄)는 우리가 추구해야할 ‘오래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다. “한 행성에 두 번 기회는 없다. 길은 오직 한 번만 갈 수 있다”는 경고다. 생태경제학자와 환경과학자인 지은이들이 ‘글로벌 자본주의 실험이 땅을 황폐화하고 문화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는 <뉴욕타임스> 기사를 들고 나우루를 찾았을 때 주민들의 모습은 아주 태평스러웠다. 심지어 행복해보이기까지 했다. 근시안적인 오판으로 자원이 고갈되고 생물이 멸종하고 있는데도 ‘내일은 저절로 챙겨진다’는 듯.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나우루인과 지구인의 차이는 다만 이것 뿐이다.

“나우루에게는 원조를 구하거나 이주할 주변국이 있다. 그런데 지구에게도 이웃이 있는가.”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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