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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딸 같은…친구 같은…“엄마, 엄마”

등록 2005-03-04 15:32수정 2005-03-04 15:32

이 시대 어머니는 ‘희생’과 ‘무조건 사랑’의 다른 말이다. 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약한 남성’이 유행하고 전면에 내세워지는 ‘아버지’와는 이런 점에서 사뭇 다르다. ‘아버지’는 이를테면 ‘아빠, 힘내세요’ 광고카피처럼 위축된 남성성을 북돋우며 대개 정치, 상업적 목적을 지향한 시도에 맞닿은 것이다. 둘 다 편파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억누르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들과의 관계 안에서 농익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나 감동까지 물리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섯살배기 딸이 된 엄마>를 먼저 따라가 본다. 대기업을 다니는 딸을 항상 자랑스러워하던 어머니가 어느 날 불쑥 내뱉는다. “아니 회사를 아직도 다녀? 그놈의 회사를 뭐 그리 오래 다녀. 돈이 사람보다 중요해?” 어머니의 말이 아니라 치매 걸린 어머니의 신음 소리였다. 직장 생활 20년을 그렇게 접었다. 책은 치매를 앓으면서 불현듯 다섯 살로 돌아간 어머니와 그의 딸, 신희철(46)씨의 실제 이야기다.

유달리 목욕을 하지 않겠다며 딸과 실랑이를 벌인 2000년 어느 봄날, 어머니는 순간 정신을 놓았다. 딸 또한 온전할 리 없다. 당장 죽지 않게만 해달라고 딸은 되뇌었지만 곧 벌어지는 일상은 전쟁을 닮아 있다. 하지만 아무 때나 ‘집에 데려 달라’며 밤잠을 훼방 놓고 집을 나가는 등의 어머니를 바라지하는 일의 고통을 딸은 옛 어머니의 빈 자리와 ‘딸이 된 엄마’의 새로운 자리를 깨닫고, 발견하는 기쁨으로 대체해 간다. 그것이 한편 글쓴이가 치매의 약이 사랑이라고, 그래서 설사 사별을 하게 되더라도 울지 않는 딸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힘이다.

<엄마와 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은 프랑스에서 ‘어머니와 딸’이라는 주제로 치러진 소설 공모전에 뽑힌 글을 모은 것이다. 각각이 모녀간의 증오, 갈등, 사랑 따위를 다채롭게 가로지른다. 장례식 상품권을 생일 선물한 딸과 이제 칠순을 맞이한 어머니 사이에 흐르는 긴장(<장례식 상품권>)엔 활어처럼 생동하는 ‘관계’의 영속성에 대한 기대가 숨어 있다. <검붉은 키스>에서는 개인적 모녀관계가 보편적 자매애로 성숙하기도 한다. 열다섯 살에 강간, 임신하게 된 린다(Linda)는 딸을 리나(Lina)라 이름한다. 아버지(Daddy)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모든 희생을 감수하며 자신이 키워낸 딸과의 사랑, 연대가 바로 둘의 생명력인 것이다. 모두 20편으로 짜여진 <엄마와 딸…>의 어머니 대개가 우리에게 친숙한 어머니보다 훨씬 더 주체적이고 은유적이다. 관계의 진실을 풍부하게 고민하도록 돕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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