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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미묘한 말맛으로 차려낸 ‘뉘앙스 국밥’

등록 2006-08-31 19:58수정 2006-09-01 14:42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낱말편1<br>
김경원·김철호 지음. 최진혁 그림. 유토피아 펴냄. 1만원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낱말편1
김경원·김철호 지음. 최진혁 그림. 유토피아 펴냄. 1만원
잠깐독서

문1) 열차는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갈까, ‘안으로’ 들어갈까?

문2) 못된 송아지에 뿔 나는 곳은 ‘엉덩이’일까, ‘궁둥이’일까?

속이나 안이나 엉덩이나 궁둥이나 그게 그 말일 것 같지만 말결에 따른 미세한 차이가 오묘하다. ‘동굴 속’, ‘괄호 안’은 자연스러운데 ‘버스 속’, ‘머리 안’은 어색하지 않은가. 바지 ‘궁둥이’가 해지면 괜찮지만, 바지 ‘엉덩이’가 해지면 이상하지 않은가. 왜 그럴까를 궁리해 봐도 명쾌하게 설명할 길이 없다. 국어사전을 뒤적여 봐도 이 낱말이나 저 낱말이나 뜻풀이가 똑같다. ‘뉘앙스 사전’을 표방한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줄여 <국밥>)의 요약 풀이를 보자. 문1) 1차원과 2차원에는 ‘안’을 쓰고 3차원에는 ‘속’을 쓴다. 속이 비면 ‘안’이고 꽉 차면 ‘속’이다. 문2) 궁둥이는 바닥에 닿은 아래 부위이고 엉덩이는 전체를 가르킨다.

<국밥>은 이처럼 무심코 써왔던 유사한 말들을 곰씹어 미묘한 맛의 차이를 풀어놓았다. ‘기쁘다’와 ‘즐겁다’, ‘새’와 ‘새로운’, ‘씨’와 ‘씨앗’, ‘다시’와 ‘또’ 등 언어습관에 따라 섞어 쓰고 있는 말들의 뉘앙스를 포착해 무릎을 치게 만든다. 문제-풀이-요약-답으로 이어지는 형식을 취해 ‘한국어 연습장’이라는 참신한 부제를 붙였다. 저자들은 답을 인정하건 안하건 스스로 각 낱말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보는 연습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국밥>의 진국은 풀이과정이다. 번역가인 동시에 출판 편집자로 언어를 벼려온, ‘국어 실력으로 밥 먹고 사는’ 저자들은 풍성한 사례를 동원해 재미지게 이야기 살을 붙여간다. ‘과일’과 ‘과실’과 ‘열매’를 가르는 기준은 모과가 과일 망신을 시키는 이유로 풀어가고 ‘남자’와 ‘사내’와 ‘사나이’의 차이는 남자라고 다 같은 남자냐며 운을 뗀다. 비슷한 말일지라도 때론 ‘아’ 다르고 ‘어’ 다른 수준을 넘어서 의미의 증폭을 드러내는 예시도 보여준다. “하던 일 ‘끝내고’ 나 좀 거들어요”와 “하던 일 ‘마치고’ 나 좀 거들어요”라고 말했을 때 청을 거절당할 확률은 전자가 높다. ‘끝내다’에는 강제성이 묻어나기 때문.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를 사오게 한다.’ 뉘앙스의 힘이다.

‘낱말편’에 이어 ‘문장편’까지 <국밥> 시리즈로 이어갈 참이다.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눈치 챘겠다. <18°>에 29회에 걸쳐 연재했던 내용을 삽화와 ‘덤’ 코너를 추가해 소화하기 좋게 갈무리했다. 답)안으로, 엉덩이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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