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20세기 건축의 모험(개정판)> 이건섭 지음. 수류산방중심 펴냄
이 책은 독특한 서평집이다. 건축 관련서를 대상으로 한 주제부터 그렇다. 건축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친 ‘원전’ 18권과 다큐멘터리 2편을 통해 건축 책을 읽는 지침을 제시하고자 한다. 건축가인 지은이는 1996년 그가 미국 건축가 매튜 밴 더 보그, 스콧 올리버와 함께 선정한 건축명저목록과 일본 건축학회의 20세기 건축명저목록에서 다룰 책을 골랐다.
두 사람의 저서가 두 권씩 포함돼 건축명저 18권의 저자는 16명이다. 이 중에는 러시아 출신 미국 작가 아인 랜드와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가 있어 이채롭다. 미국 현대 보수주의 철학의 젖줄이라는 아인 랜드의 건축명저는 그녀의 소설 <파운틴헤드>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하워드 로크는 고집불통인 건축가다. 그는 “많은 미국인들을 열광시켰고, 그에게 감명 받은 미국인들은 서서히 개인의 불가침성, 존엄성을 대폭 보장하는 쪽으로 사고를 바꾸어 간다. 프론티어 정신과 결합된 개인 존중의 사고는 지금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을 지탱하는 힘이다.” 랜드의 작품과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 그리고 르 코르뷔지에의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 지그프리드 기디온의 <공간·시간·건축>, 톰 울프의 <바우하우스에서 오늘의 건축으로>, 윌리엄 미첼의 <비트의 도시> 등은 우리말로 옮겨졌다. 지은이는 이들 한국어판에 관심이 없거나 대체로 낮은 점수를 준다.
만듦새 또한 여느 서평집과는 확연히 다르다. 편집이 뛰어나다. 본문을 파고들어가는 각주 형태는 처음 본다. 건축이 공학일 뿐더러 조형예술이고 디자인이라는 점을 서평집의 형식으로도 보여주려는 것 같다. 건축명저 리뷰는 명저를 개관하고 내용을 파악하며 건축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지은이는 작은따옴표를 적절하게 활용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테그러티’라는 말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며 여섯 달을 보냈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들어앉아 흘러간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뒤적이다 고등학생 때 즐겨보던 ‘영한 대역’란을 펼쳤는데, 거기에 이 단어가 ‘고결성’으로 번역되어 있었다. ‘바로 이거다’하고 무릎을 치고 뛰쳐나온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또한 찰스 젱크스가 <포스트 모던 건축의 언어>에서 주장하는 바를 간결하게 정리한 것이 그렇다. ‘건축은 한 사회 안에서 의사를 소통하는 행위다. 그런데 근대 건축은 그 엄격함과 추상성으로 사용자와 소통의 단절을 가져 왔다. 이제 그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건축은 언어로서의 특질, 즉 은유·암시·외연하는 성질을 회복해야 한다. 이 회복의 가능성은 포스트 모던 고전주의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그 기운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보인다.’
반면, 꽤 많이 나오는 괄호의 용법은 그렇지 못하다. 일부는 괄호를 푸는 것이 적당하고, 나머지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부연 설명이다. 더러 나이브한 표현이 나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1972년 로마 클럽은 <성장의 한계>를 발간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적어도 세계의 절반은 로마 클럽 보고서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책이 ‘대중을 위한 쉬운 건축 안내서’ 구실을 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리고 도시에 내재한 문제점과 가능성을 파악하지 않은 채 멋들어진 외양만을 추구한 프로젝트는 전부 실패했다는 제인 제이콥스의 지적은 개발이 진행 중인 어정쩡한 신도시에 거주하는 나 역시 절감하고 있다. 최성일/도서평론가
반면, 꽤 많이 나오는 괄호의 용법은 그렇지 못하다. 일부는 괄호를 푸는 것이 적당하고, 나머지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부연 설명이다. 더러 나이브한 표현이 나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1972년 로마 클럽은 <성장의 한계>를 발간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적어도 세계의 절반은 로마 클럽 보고서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책이 ‘대중을 위한 쉬운 건축 안내서’ 구실을 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리고 도시에 내재한 문제점과 가능성을 파악하지 않은 채 멋들어진 외양만을 추구한 프로젝트는 전부 실패했다는 제인 제이콥스의 지적은 개발이 진행 중인 어정쩡한 신도시에 거주하는 나 역시 절감하고 있다. 최성일/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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