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파우스트> 1부 석판화 삽화 ‘도시 위를 배회하는 메피스토펠레스’. 들라크루아는 1828년 출간된 <파우스트> 프랑스어 번역판에 들어가는 파우스트 석판화 연작 17점을 제작했는데, 이 그림이 그 첫 작품이다. 그림에서 인간과 동물의 중간 존재로 묘사된 메피스토는 무척 거대하게 그려진 반면 도시는 매우 작고 희미하게 묘사돼 인간이 괴물의 힘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철학에서 법학·의학·신학까지 지적 갈증을 채우다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된 파우스트
신에게서 떠나 악마를 따라 인생의 발길을 옮긴다
“세상을 산산조각내라”는 외침서 근대성의 싹 ‘꿈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된 파우스트
신에게서 떠나 악마를 따라 인생의 발길을 옮긴다
“세상을 산산조각내라”는 외침서 근대성의 싹 ‘꿈틀’
고전 다시읽기/괴테 <파우스트>
신은 너무나 쉽게 악마에게 그 사람을 넘겼다. 그의 진실한 믿음을 보건대, 결코 자신을 배반할 리 없다고 여겼던 것이리라. 어찌하였든, 그는 먹잇감으로 내던져졌다. 이미 비극은 시작된 것이다. 신실하기에 시험 당해야 했던 욥의 일대기는 일견 어처구니없기도 하다. 만약, 그가 회의하고, 배반하고, 떠난 자였다면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었을 것인가. 그러기에 평소 주께서 가르쳐준 기도문을 외워야 하는 법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문학사의 욥 ‘파우스트’
여기 또 악마의 손에 넘겨진 문제의 인물이 있다. 파우스트 박사. 말하자면, 책을 신성한 샘물로 여겨 거기서 퍼올린 한모금의 물로 지적 갈증을 해갈하던 ‘책상물림’이었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욥과 다르다. 주께서 이르시길 “그가 지금은 혼미한 가운데 나를 섬긴다 할지라도”라도 했기 때문이다. 신의 품은 넓었다. 확신의 믿음만 격려한 것이 아니라 의혹의 신앙도 높이 쳐준 것이다. 어차피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주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한다. “머지않아 나는 그를 명료한 곳으로 인도할 것이로다.”라고. 악마는 주의 말씀에 “아멘”이라 응답하지 않는 법이다. 대거리를 늘어놓았다. “당신이 내게 허락만 해준다면, 그자를 나의 길로 슬쩍 끌고 가리다!”라고.
분명, 파우스트는 잠들기 전에 주기도문을 외우지 않았을 것이다. 주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 금하지 않겠노라”. 파우스트는 이제 문학사의 욥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에게 무시무시한 고통과 환란이 준비되어 있는가. 문학이 성경 같을 리가 있겠는가. 그를 위해 마련된 것은 쾌락과 향락이다. 비록 그것이 타락의 대가일지라도.
파우스트는 지적으로 파산한 학자다. 철학에서 법학을 거쳐 의학과 신학까지 두루 섭렵했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되”고 말았다. 삽살개로 변신한 메피스토펠레스가 유혹의 손길을 뻗은 것이 바로 이 때다. 파우스트의 종이 되어 “인생의 발길을 옮”기게 해주는 대신, 저승에서는 그 역할을 바꾼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파우스트는 외친다.“약속은 약속이다! 내가 순간을 향하여,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말을 한다면, 너는 나를 꽁꽁 묶어도 좋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인간형의 탄생을 예감하게 된다. 욕망충족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겠다는 강한 의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네가 우선 이 세상을 산산조각 때려부순다면, 그 다음 어떤 다른 세상이 생겨나도 상관없다.“는 파우스트의 외침에서 중세적 세계관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근대성의 싹을 엿보게 된다. 향락의 길에 접어들기에 파우스트는 너무 늙었다. 마녀의 약을 마시고 젊음을 되찾고, 마가레테에게 연심을 품는다. 선남선녀의 만남에는 설레임의 물결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악마의 도움으로 얻은 과일에는 독이 들어가 있는 법이다. 마가레테는 임신하게 되고, 그녀의 오빠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칼에 찔려 즉사한다. 어머니는 그녀가 준 수면제 탓에 죽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마가레테에게 살해당한다. 뒤늦게 마가레테가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안 파우스트가 그녀를 탈옥시키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제1부의 무대는 개인적인 영역에서 펼쳐진 욕망의 편력이다. 2부에 이르러 파우스트의 무대는 공적 영역으로 확대된다. 메피스토펠레스와 짝패가 되어 궁정에 나타난다. 재정난에 놓인 황제를 도와준답시고 땅속에 매장되어 있을 황금과 진주를 담보로 지폐를 발행하도록 부추킨다. 파우스트에게는 중대한 임무가 내려진다. 황제가 헬레나와 파리스의 영혼을 불러내라고 채근한 것이다. 메피스토텔레스에게 그 방법을 전해들은 파우스트는 마침내 모험을 강행하고, 두 사람의 영혼을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향로에서 피어오른 연기속에 나타난 헬레나에게 정작 반한 이는 파우스트다. 그녀를 잡으려다 유령들은 사라지고 파우스트는 기절하고 만다. 제2부 첫막이 여기서 내려진다. 두 번째 막에는 파우스트의 조수인 바그너가 만든 인간이 등장한다. 이름하여 호문쿨루스. 복제인간 출현의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상당히 놀라운 예지력이다. 18세기 문학작품에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조인간의 탄생이 그려져 있어서다. 물론, 괴테가 그린 호문쿨루스가 엄밀한 의미의 복제인간은 아니다. 16세기에 민간치료법을 개발한 의사로 알려진 파라켈수스의 학설을 참조했을 뿐이다. 2막에서는 호문쿨루스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극을 이끌어가는데, 그의 권유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리스에서 열리는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 축제에 참여한다. 신의 섭리 거스르는 인조인간 등장 마침내 헬레나가 돌아왔다. 그녀 때문에 숱한 영웅들이 에게해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3막의 무대는 스파르타의 궁전을 배경으로 한다. 메넬라오스왕이 제사를 준비하라고 헬레나를 먼저 보낸 것이 불찰이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변장한 시녀장의 계교에 넘어가 헬레나는 파우스트의 가슴에 안긴다.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지고, 그 열매로 오이포리온이 태어난다. 그런데 이 녀석은 암만해도 이카루스의 영혼을 닮았던 모양이다. 새인양 날아보려다 어이없이 죽어버렸고, 헬레나 역시 자식을 따라 사라진다. “즐거움 뒤에는 이내 무서운 슬픔이 따르는” 법이다. “또 전쟁이로구나!” 4막에서는 1막에 나왔던 황제가 내전에 휩싸인 상황을 그리고 있다. 전세는 황제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니, 악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는 두 인물은 ‘구원투수’ 격이었다. 총사령관은 “속임수로써는 결코 확고한 행복이 마련되지 않”는다고 진언했으나, 너무 늦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수완으로 전쟁은 황제의 승리로 끝난다. 논공행상에서 파우스트는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바다 밑에 깔려있는 땅인 해안지대를 챙겼다. 근대적 계몽의 어두운 그림자 5막에 이르러 우리는 1부에서 그 싹을 보았던 근대성의 온전한 모습을 보게 된다. 파우스트가 “마지막이면서도 최대의 공사”를 펼치니, “수백만명의 백성에게 땅을 마련해주는” 간척사업을 벌인 것이다. 그러나 이 공사를 감독하는 이가 누구던가. 메피스토펠레스이니, 진정한 가치조차 타락한 방법으로 이루려는 악마다. “사람을 제물로 바쳐 피를 흘린 게 틀림없어요. 밤이면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거든요”라는 바우치스의 목격담이 이를 입증한다. 이제 눈이 먼 파우스트는 무덤 파는 소리가 수로공사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천국같은 땅을 세운 것으로 알고 죽어간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희생을 강요했던 근대적 계몽의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파우스트의 영혼이 끝내 신의 품에 안겨졌다는 점을 돋을새김하면, 이 작품의 주제는 종교성을 띠게 된다. 이 세상에 참 평화는 없으며, 구원은 오로지 신의 조건없는 사랑으로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파우스트의 시작은 욥을 닮았으나, 그 과정은 신의 계시를 거부했던 요나와 유사하다. 하나, 파우스트를 근대성과 연관해 분석하면, 김수용의 주장대로 “계몽주의 이후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새로운 출발, 인간이 피조물이 아닌 창조주가 되어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려는 프로젝트 모던”이 주제가 된다. 고전의 미덕은 해석의 다양성에 있다. 어디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가는 전적으로 읽는이의 몫이다. 이권우/도서평론가 서평자 추천 도서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외젠 들라크루아·막스 베크만 그림, 이인웅 옮김, 문학동네 펴냄 파우스트 완역본 <괴테 파우스트 휴머니즘> 김수용 지음, 책세상 펴냄 파우스트를 근대성의 입장에서 분석한 연구서
파우스트는 지적으로 파산한 학자다. 철학에서 법학을 거쳐 의학과 신학까지 두루 섭렵했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되”고 말았다. 삽살개로 변신한 메피스토펠레스가 유혹의 손길을 뻗은 것이 바로 이 때다. 파우스트의 종이 되어 “인생의 발길을 옮”기게 해주는 대신, 저승에서는 그 역할을 바꾼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파우스트는 외친다.“약속은 약속이다! 내가 순간을 향하여,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말을 한다면, 너는 나를 꽁꽁 묶어도 좋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인간형의 탄생을 예감하게 된다. 욕망충족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겠다는 강한 의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네가 우선 이 세상을 산산조각 때려부순다면, 그 다음 어떤 다른 세상이 생겨나도 상관없다.“는 파우스트의 외침에서 중세적 세계관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근대성의 싹을 엿보게 된다. 향락의 길에 접어들기에 파우스트는 너무 늙었다. 마녀의 약을 마시고 젊음을 되찾고, 마가레테에게 연심을 품는다. 선남선녀의 만남에는 설레임의 물결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악마의 도움으로 얻은 과일에는 독이 들어가 있는 법이다. 마가레테는 임신하게 되고, 그녀의 오빠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칼에 찔려 즉사한다. 어머니는 그녀가 준 수면제 탓에 죽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마가레테에게 살해당한다. 뒤늦게 마가레테가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안 파우스트가 그녀를 탈옥시키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제1부의 무대는 개인적인 영역에서 펼쳐진 욕망의 편력이다. 2부에 이르러 파우스트의 무대는 공적 영역으로 확대된다. 메피스토펠레스와 짝패가 되어 궁정에 나타난다. 재정난에 놓인 황제를 도와준답시고 땅속에 매장되어 있을 황금과 진주를 담보로 지폐를 발행하도록 부추킨다. 파우스트에게는 중대한 임무가 내려진다. 황제가 헬레나와 파리스의 영혼을 불러내라고 채근한 것이다. 메피스토텔레스에게 그 방법을 전해들은 파우스트는 마침내 모험을 강행하고, 두 사람의 영혼을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향로에서 피어오른 연기속에 나타난 헬레나에게 정작 반한 이는 파우스트다. 그녀를 잡으려다 유령들은 사라지고 파우스트는 기절하고 만다. 제2부 첫막이 여기서 내려진다. 두 번째 막에는 파우스트의 조수인 바그너가 만든 인간이 등장한다. 이름하여 호문쿨루스. 복제인간 출현의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상당히 놀라운 예지력이다. 18세기 문학작품에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조인간의 탄생이 그려져 있어서다. 물론, 괴테가 그린 호문쿨루스가 엄밀한 의미의 복제인간은 아니다. 16세기에 민간치료법을 개발한 의사로 알려진 파라켈수스의 학설을 참조했을 뿐이다. 2막에서는 호문쿨루스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극을 이끌어가는데, 그의 권유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리스에서 열리는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 축제에 참여한다. 신의 섭리 거스르는 인조인간 등장 마침내 헬레나가 돌아왔다. 그녀 때문에 숱한 영웅들이 에게해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3막의 무대는 스파르타의 궁전을 배경으로 한다. 메넬라오스왕이 제사를 준비하라고 헬레나를 먼저 보낸 것이 불찰이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변장한 시녀장의 계교에 넘어가 헬레나는 파우스트의 가슴에 안긴다.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지고, 그 열매로 오이포리온이 태어난다. 그런데 이 녀석은 암만해도 이카루스의 영혼을 닮았던 모양이다. 새인양 날아보려다 어이없이 죽어버렸고, 헬레나 역시 자식을 따라 사라진다. “즐거움 뒤에는 이내 무서운 슬픔이 따르는” 법이다. “또 전쟁이로구나!” 4막에서는 1막에 나왔던 황제가 내전에 휩싸인 상황을 그리고 있다. 전세는 황제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니, 악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는 두 인물은 ‘구원투수’ 격이었다. 총사령관은 “속임수로써는 결코 확고한 행복이 마련되지 않”는다고 진언했으나, 너무 늦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수완으로 전쟁은 황제의 승리로 끝난다. 논공행상에서 파우스트는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바다 밑에 깔려있는 땅인 해안지대를 챙겼다. 근대적 계몽의 어두운 그림자 5막에 이르러 우리는 1부에서 그 싹을 보았던 근대성의 온전한 모습을 보게 된다. 파우스트가 “마지막이면서도 최대의 공사”를 펼치니, “수백만명의 백성에게 땅을 마련해주는” 간척사업을 벌인 것이다. 그러나 이 공사를 감독하는 이가 누구던가. 메피스토펠레스이니, 진정한 가치조차 타락한 방법으로 이루려는 악마다. “사람을 제물로 바쳐 피를 흘린 게 틀림없어요. 밤이면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거든요”라는 바우치스의 목격담이 이를 입증한다. 이제 눈이 먼 파우스트는 무덤 파는 소리가 수로공사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천국같은 땅을 세운 것으로 알고 죽어간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희생을 강요했던 근대적 계몽의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파우스트의 영혼이 끝내 신의 품에 안겨졌다는 점을 돋을새김하면, 이 작품의 주제는 종교성을 띠게 된다. 이 세상에 참 평화는 없으며, 구원은 오로지 신의 조건없는 사랑으로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파우스트의 시작은 욥을 닮았으나, 그 과정은 신의 계시를 거부했던 요나와 유사하다. 하나, 파우스트를 근대성과 연관해 분석하면, 김수용의 주장대로 “계몽주의 이후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새로운 출발, 인간이 피조물이 아닌 창조주가 되어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려는 프로젝트 모던”이 주제가 된다. 고전의 미덕은 해석의 다양성에 있다. 어디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가는 전적으로 읽는이의 몫이다. 이권우/도서평론가 서평자 추천 도서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외젠 들라크루아·막스 베크만 그림, 이인웅 옮김, 문학동네 펴냄 파우스트 완역본 <괴테 파우스트 휴머니즘> 김수용 지음, 책세상 펴냄 파우스트를 근대성의 입장에서 분석한 연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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