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고전다시읽기] 악마가 쓴 자기 계발서/안광복

등록 2006-07-27 20:36수정 2006-07-28 15:36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고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수학법칙처럼 변함없다’는 확산으로 근거없는 주장을 펼치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한 단어마다 120만명, 한 페이지마다 4700명, 한 장마다 12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악마의 자기계발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고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수학법칙처럼 변함없다’는 확산으로 근거없는 주장을 펼치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한 단어마다 120만명, 한 페이지마다 4700명, 한 장마다 12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악마의 자기계발서다.
큰줄기는 아리안족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인종우월주의
의회민주주의·주식거래는 아리안족 힘빼는 유대인의 음모
똑같은 내용 집요하게 반복 ‘공공의 적’ 누군지 주입
‘나의 투쟁’ 책갈피마다 12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전 다시읽기/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나의 투쟁(Mein Kampf)>을 읽기란 무척 버겁다.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서부터 숨이 막히는데다가, 내용도 방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의 투쟁>은 1925년 발간 첫해에 이미 만권이 넘게 팔렸단다. 그 후 독일에서만 400만부가 나갔고, 금서(禁書)로 지정된 나라가 적잖은 지금도 이 책은 ‘나치즘의 바이블’로 널리 읽히고 있다.

<나의 투쟁>에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토록 많은 독자들을 빨아들이고 있을까? 그 ‘비법’이 궁금해서 책을 읽었다면 또 한 번 난감해질지 모르겠다. 큰 줄기를 이루는 주장만 살펴보더라도 엉성하기 그지없는 탓이다.

나치즘의 바이블 독일서만 400만부

잘 알려져 있듯, <나의 투쟁>의 주된 틀은 인종우월주의이다. 히틀러에 따르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고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실은 수학법칙처럼 변함없는 진리다. 그런데 누가 강한 종족인지는 노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푸들을 아무리 훈련시켜도 그레이하운드만큼 뛰게 할 수는 없다. 인류도 마찬가지다. 열등한 족속을 아무리 단련시킨다고 해도 세상의 문화를 창조하고 이끄는 종족을 이길 수는 없다. 아리안 족이야 말로 가장 뛰어난 인종이므로 이들의 세계지배는 당연한 자연의 섭리라고 하겠다.

그러나 가장 열등한 종족인 유태인들이 문제다. ‘부정과 몰염치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는’ 이들은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근본에서부터 무너뜨린다. 의회민주주의와 마르크스주의도 아리안족을 무너뜨리기 위한 유태인의 음모이다. 의회민주주의는 뛰어난 소수가 약한 다수를 지배하는 당연한 자연법칙을 무너뜨린다. 어리석고 비겁한 군중이 수를 앞세워 뛰어난 영웅들을 억누르는 것이 의회민주주의의 모습 아닌가? 유태인은 이렇게 뛰어난 자들이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어 아리안족의 힘을 약하게 한다. 마르크스주의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종족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나도록 부추길 뿐더러, 모두가 평등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아리안족이 열등한 종족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끔 만든다. 이 또한 간악한 유태인의 음모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유태인들은 아리안족의 재산을 주식과 증권거래라는 형태로 바꾸게 하여, 전 세계를 조용히 약탈하고 있다. 그런데도 영향력 있는 언론은 침묵하고 있다. 경영권이 그네들 손에 쥐어져 있는 탓이다. 그들은 투쟁보다는 평화가, 우월한 자의 지배보다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좋다는 그릇된 믿음을 민중에게 심어주고 있다. 이렇게 그들은 열등한 주제에 우월한 아리안족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안 족의 국가인 독일제국은 종(種)의 보존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기 보존 욕구에 충실하게 따르는 종족이 그렇지 못한 인종을 이길 수밖에 없다. 유태인들은 끊임없이 아리안족의 혈통을 더럽히고 종족을 보존하려는 욕구를 떨어뜨리려 한다. 그네들의 간악함에 맞서 아리안족은 ‘게르만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다수결이 아닌 진정 뛰어난 자가 이끄는 정치, 즉 “지도자의 모든 권위는 아래로, 책임은 위로” 향하는 체제 속에서만 독일 제국은 비로소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위에 있을 수 있다.(Deutschland uber alles!)”

논리학자의 눈에 이러한 <나의 투쟁>의 논지들은 추리의 온갖 오류 모음처럼 여겨질 뿐이다. 주장만 있고 근거는 없으며 있다 해도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나마도 똑같은 내용의 집요한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히틀러는 이 점 때문에 돋보인다. 그는 논리와 도덕 없이도 마음을 사로잡고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적의에 찬 수천의 시선을.......수 시간의 열변을 통해 신성한 분노로 요동치는 대중으로 바뀌어 놓을 수 있었던” 그의 능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나의 투쟁>에서 찾아야 할 진정한 ‘비법’은 여기에 있다.

사람은 알아야 할 것보다 원하는 것만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히틀러는 당시 독일 민중의 열패감을 거울처럼 그대로 비추어 주었을 뿐이다. 된통 얻어맞고 난 다음에는 평화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쑥 들어가는 법이다. 어서 빨리 힘을 길러서 되갚음 하고 싶은 열망만이 마음을 지배하곤 한다. 게다가 군중은 복잡한 분석보다는 ‘공공의 적’이 누구인지 눈으로 확인시켜줄 때 쉽게 설득되곤 한다. 유태인이야 말로 수 천 년 간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지 않았는가?

조직관리 뛰어난 CEO 히틀러

책 곳곳에서 우리는 히틀러의 연설 능력이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전단지를 손으로 썼을 때와 타자기로 작성했을 때의 차이까지도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안내문은 입말로 썼을 때 효과적이며 ‘특히 공짜로 얻었을 때’, 그것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가 분명히 표지에 나와 있을 때 위력을 발휘한다는 충고까지 던진다. 심지어 똑같은 연설이라 해도 오후 3시와 밤 8시에 할 때 그 효과가 어떻게 다른지 까지 세심히 신경을 썼다. 필요하다면 적들의 것이더라도 망설임 없이 ‘벤치마킹(?)’ 했다. 나치의 붉은색 휘장을 마르크스주의에서 따온 것이다. 때문에 적들은 분노했고, 이를 통해 되레 히틀러는 “적들을 통해 우리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고 뿌듯해 한다.

히틀러는 조직 관리에도 뛰어났던 인물이었다. 그는 당원 일곱에 재산이라곤 ‘고무 스탬프조차 없었던’ 단체를 불과 4년 만에 수십만 당원에 17만 마르크의 예산을 지닌 ‘국가 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으로 키워내는 수완을 발휘한다. 요새로 본다면 히틀러는 유능한 CEO였던 셈이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조직 관리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기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운동을 시작할 때는 모든 활동을 한 곳에 집중하라. 그리고 확실한 지지자를 길러내는 데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한다. 지도부의 권위가 굳건하게 섰을 때에야 비로소 확장을 시도하는 게 좋다. 만약 적당한 지도자가 없을 때는 차라리 확충을 포기하는 쪽이 낫다. 곧 무너져버려서 원래 있던 기반까지 약하게 하기 때문이다.

당원은 지지자가 없을 때 늘리고, 지지층이 두터워졌을 때 줄여야 한다. 시절이 어려울 때는 당원이라는 의무감을 지워야 참여를 유도할 수 있고, 조직이 커졌을 때는 소수정예집단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대중에게 심어놓아야 충성심을 유도할 수 있는 탓이다. 하나씩 들을수록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나의 투쟁>은 설득기법과 조직 관리에 관한 실용서로서의 가치가 탁월한 책이다. 한마디로 ‘악마가 쓴 자기계발 분야 베스트셀러’라고나 할까?

욕망에 올라탄 열정 파멸 불러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하지만 우리는 히틀러가 결국 독일과 온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갔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도 “<나의 투쟁>의 모든 단어마다 125명, 한 페이지마다 4천 700명, 한 장마다 120만 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할 만큼의 엄청난 파국이었다. 자연과학에서는 제일 합리적인 설명이 우리를 진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이 점은 세상살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이성적인 해석과 비전은 제일 도덕적이고 바람직한 결말을 낳는다. 반성 없이 욕망에 올라탄 열정은 사람들을 순간 혹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결국은 파멸로 이끌 뿐이다. 민족과 보복이 점점 설득력 있는 화두가 되고 있는 시대, <나의 투쟁>은 우리가 유념해야 할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서평자 추천 도서

나의 투쟁

아돌프 히틀러 지음, 서석연 옮김

(범우사 펴냄, 1996년 개역판)

나의 투쟁 완역본임.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은 대부분 요약 번역판이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지음, 김태희 옮김

(교양인 펴냄, 2006)

나치와 히틀러의 선동 기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대공황과 나치의 경제회복

R.J. 오버리 지음, 이헌대 옮김

(해남 펴냄, 1998)

나치의 집권과정과 히틀러의 역할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