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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권우의요즘읽은책] 하버드 때려치운 만화가의 유머 일품

등록 2006-07-06 19:51수정 2006-07-07 14:47

이권우/도서평론가
이권우/도서평론가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1, 2

어디서 그런 ‘전통’이 비롯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수업을 빼먹으면 그 까닭을 밝힌 ‘문서’를 만들어와 출석한 것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한다. 승민이도 넓게 보자면 그런 경우였다. 겸연쩍은 태도로 사유서를 내놓는데, 서울컬렉션에 참가했다는 내용이었다. 모델활동을 하는 모양이네, 라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녀석을 다시 쳐다보니, (순간의 착각이었겠지만) 내 청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준수한 외모와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지 않던가. 가만 생각해보니, 모델입네 하며 시건방 떨지 않고, 수업을 착실히 들어온 듯했다. 아마 그래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이 샘솟았을 터이다. 몇권의 책을 소개해주며 읽어보라고 했다.

책을 읽어보라고 해놓고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런다고 될 일도 아닌데다, 학업에 모델공부에 바쁘리라 여겨서였다. 그런데 얼마전 메일이 왔다. 방학 때라 몸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는데, 전번에 권해준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지라 몇권 더 볼만한 책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끝부분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라고 덧붙여 놓았으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해서, 책을 가까이하기엔 너무 안 좋은, 고온다습한 장마철에 흥미롭게 읽을만한 책이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떠올린 책이 래리 고닉이 만화로 그린 세계사다. 그 유명하다는 하바드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다 집어치우고 만화가가 된 괴짜. 방대한 세계사를 요령껏 압축해낸 작가적 역량. 서양 중심사에서 벗어나 아시아도 충실히 다룬 균형감각. 웬만한 전공서적에 버금가는 풍부한 참고문헌. 이 정도면 대학생에게도 권할만한 만화책이지 않겠는가 싶었다.

이 책의 매력은 이것말고도 더 있다. 작가의 과학적 사유력과 만화적 유머, 그리고 종교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태도가 그것이다. 어느 세계사가 빅뱅과 진화를 다루겠는가. 과학에 밝은 만화가가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아무리 만화라도 유머가 없다면 흥미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지식의 양에 주눅 들지 않게 적절한 유머를 구사하고 있는데, 이는 아무래도 옮긴이의 역량도 한몫한 듯싶다. 부처가 식중독으로 죽었다는, 종교용어로 표현하자면 열반했다는 말은, 이 책 덕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어딘가 신성모독성 발언 같다. 예수를 일러 “평화, 사랑, 용서를 역설한 사람, 불같은 심판을 내리는 사람, 랍비중의 랍비, 예언자, 우상파괴자, 의사, 공산주의자”라고 평가한 것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내 피를 마시고 내 살을 먹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라는 말을 들어 ‘미식가’라고 하는 데는 두 손 다 들게 된다.

내가 이 책을 권하려는 데는 또다른 ‘노림수’가 있다. 세계사를 재미있게 읽는다면, 자연스럽게 래리 고닉의 다른 만화책,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유전학>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SEX>를 읽어볼 터이고, 그러다보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변영우의 <세계사와 함께 읽는 중국사 대장정>에도 관심을 기울이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한여름의 독서목록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그 책 다 읽으면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를 읽어보라고 하고 싶은데, 너무 서둘렀다가 지레 겁먹고 다시는 책 안 읽는다고 손사래칠까 걱정돼서다. 언제쯤 이 책을 권해야 할까? 즐거운 고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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