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트라이앵글-칼라일 그룹의 빛과 그림자
댄 브리어디 지음. 이종천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 1만5000원
댄 브리어디 지음. 이종천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 1만5000원
부시·럼스펠드·소로스 가담한 정·군·재계의 기막힌 결합 약소국 약탈도 ‘황금트리오’
주로 미국에 근거지를 둔 국제 투기자본의 가공할 위력과 약탈적 행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그 이후 사태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한번 남의 일이 아닌 것으로 다가왔다. 지금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건 이들 금융투기자본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이권을 쓸어가는 그들의 대규모 투기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시비는 현실적으로 심각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닐 것이다. 옛 식민주의가 그랬듯이, 한때 지금의 개발도상국들보다 훨씬 더 보호무역을 고집해온 이른바 오늘의 선진국들이 어느날부터 자유와 개방을 앞세우며 자기들처럼 문을 활짝 열라고 약자들을 윽박지르는 건 불쌍한 빈국들에 자유와 개방의 세례를 퍼부어 그 주민들을 빈곤에서 해방시켜 주겠다는 부처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그랬을 리는 없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투기자본이 한건해서 거액을 챙기는데 성공한다면, 그건 새로운 부의 창출에 따른 대가라는 측면이 강할까, 부의 이전에 지나지 않는 약탈적 측면이 강할까.
<아이언 트라이앵글>(댄 브리어디 지음. 황금부엉이 펴냄)이 매스를 들이댄 칼라일 그룹은 세계 최대규모의 미국 사모투자회사다. 사모투자는 개인이나 기관 등에서 돈을 끌어모아 투자해서 이익을 챙긴다는 점에서 뮤추얼펀드 따위와 다를 바 없으나 주식이 아니라 기업을 매수한 뒤 기업가치를 올려서 되팔아 이윤을 남기는 일에 주력한다. 말하자면 ‘기업사냥’이다. 예컨대 칼라일은 1990에 미국 방위산업 컨설팅회사 BDM을 1억3천만달러에 인수 해서 7년 뒤인 97년 9억7500만달러에 대형 방산업체 TRW에 넘긴다. 9·11사태 직전인 2001년 8월엔 나중에 폐기된 초대형 대포 크루세이더 생산을 위한 국방예산 확보 로비를 전방위로 펼친 끝에 역시 방산업체 유나이티드디펜스로부터 2억8900만달러의 첫 배당금을 챙겼으며, 그해 12월14일 유나이티드디펜스 전격 공개로 그날 하루에만 2억3700만달러를 챙겼다.
86년 미국의 세계적 호텔체인업체 매리엇의 인수합병팀 중역으로 세금전문가였던 스티븐 노리스와 워싱턴 법률사무소에서 역시 인수합병팀 변호사였던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이 의기투합해 만든 칼라일은, 그때 그들이 자주 만나던 뉴욕 맨해턴 호화호텔 칼라일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불과 10여년만에 세계 최대급 사모펀드들을 통해 130억달러 이상을 운용하는 이례적인 급성장을 이뤘다. 그 비결은 이들이 조직속에 어떤 인물들을 끌어들였는지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 프랭크 칼루치 전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리처드 다먼 전 예산관리국장, 닉슨 전 대통령 인사담당관 프레드릭 말렉, 존 메이저 전 영국총리,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해 1주일만에 10억달러를 챙긴 퀀텀펀드의 조지 소로스, 건축재벌 오사마 빈 라덴 가문, 루 거스너 전 IBM 회장, 알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아난드 파냐라춘 전 타이총리, 그리고 한국 박태준 전 총리….
이 막강한 전현직 권력자들을 끌어들인, 그야말로 “백악관 전화교환대보다 더 많은 정치커넥션”, 이를 통해 엮어내는 방위(무기)산업 중심의 비즈니스와 어마어마한 이권(돈), 이들 정·군·재계 삼자의 기막힌 결합. 이것이 바로 ‘아이언 트라이앵글(철의 삼각지대)’이다. 널리 회자되는 ‘칼라일 방식’이란 이 가운데서도 특히 거물 정치권력자들을 무더기로 끌어들여 사업에 활용하는 유난스런 행태를 가리킨다. 아이젠하워 전 미 대통령이 퇴임연설에서 경고했던 ‘군산복합체’의 업그레이드형이라 할 만하다.
99년 서울에 온 아버지 부시는 김종필 당시 총리, 박태준 당시 자민련 총재, 이헌재 금융감독원장, 최태원 SK 회장 등을 만났으며, 2000년 6월 제주도에서 열렸던 칼라일 투자자회의에선 다시 박태준 당시 총리 등을 두루 만났다. 박태준 총리 사위인 김병주는 ‘칼라일 아시아’ 회장이었다. 이들은 국내 금융기관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었던 사모펀드 칼라일이 편법으로 미 금융기관 JP모건을 앞세워 멀쩡한 한미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고 칼라일은 4년만에 6천억원 이상의 차액을 남겼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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