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우/도서평론가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불찬성의 디자인
유럽의 68세대를 주제로 한 글을 보면서 굳게 다짐한 적이 있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말이다. 나이 들어도 기성 질서에 편입하지 않고 자유인으로 사는 삶의 태도를 본받겠다는 결심이었다. 정치권에 뛰어든, 이른바 386세대들의 훼절을 보면서 이런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젊은 날의 열정을 버리느니, 차라리 혀를 깨무는 것이 낫다고 말이다. 그러나 거리에서 한미 FTA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데도 골방에 홀로 있을 때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을 텔레비전을 통해 바라볼 때 엄습하는 자괴감은 무엇을 뜻할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말이 꼭 이럴 때 쓰라고 전해지는 속담일 터다.
그 시대에 반대한다는 것은 도덕적 정당성을 띠고 있었다. 타락한 통치세력이 부당하게 민중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한 당당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반대한다는 것은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철부지들의 딴죽걸기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국익이라는 파시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전가의 보도가 함부로 휘둘러지고 있는 실태다. 영화인들의 반대도, 농민들의 분노도, 심지어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의 이의제기도 묵살되고 있다.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곤봉세례일 뿐이다.
<불찬성의 디자인>은 이런 시대조류에 반하는 책이다. 공저자의 한 사람인 밀턴 글레이저의 말대로 “반대는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정신에 입각한 작품들이 14개의 주제로 묶여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디자인이라고 하면, 상품가치의 극대화를 꾀하는 자본의 하수인 정도로 여겼던 통념에 일격을 가한다는 점에 있다. 외려 주류언론에 길들여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죽은 정치의식을 각성시키는 힘이 담긴 디자인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디자인이 시민들의 ‘면역성’을 한방에 날리고 있는 것이다. 장광설로? 아니다. 오로지 이미지만으로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표현의 기발함에 무릎을 치면서 높이 평가한 작품은 세편이다. 첫번째는 보스니아 분쟁에 무기력하게 대응한 유엔을 풍자한 작품이다. 유엔평화유지군의 철모를 등에 진 거북이가 뒤집혀서 아등바등되는 꼴을 그림으로 그리고, 큰 활자로 ‘UNable’이라고 써놓았다. 유엔의 무력함을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작품은 ‘연료’. 대형자동차에 석유를 넣는 주유시설이 관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일러스트레이션이 90년에 벌어진 걸프전 때 <뉴욕 타임스> 특집면에 실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더욱이 그것은 90년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이라크전쟁에도 적용된다는 점에서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고 있는 작품이다(그래서 이 작품은 새로운 요소를 덧붙여 2003년 반전운동 때 다시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못박힌 여인’을 꼽을 수 있다. 여성의 자궁형태를 십자가로 만들어 수세기 동안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순교’당한 여성상을 그려냈다.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누대의 고통을 압축적이면서 상징적으로 형상화했다.
책을 덮으며 엄습한 또다른 자괴감이 있다. 그 누구도 쉽사리 반대하지 못하는 압도적인 현실에 맞서는 의미있는 도전을 작품성이라는 잣대로 함부로 평가하는 태도에 대한 혐오감이 그것이다. 작품을 보며 정작 느껴야 했던 것은, 인류의 양심에 호소하는 저항의 목소리였을 터이다. 아직도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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