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 시대를 정통으로 다룬 대하역사소설이 나왔다. 정수인(48)씨가 펴낸 〈고구려〉(새움 펴냄)인데, 아득한 시대를 7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재구성했다.
〈삼국사기〉식 모화사관에 맞서 사안별로 역사적 시비를 다투는 민족사관과 그에 뿌리 둔 역사적 상상력을 집필 동력으로 삼고 있다. 책은 서기 408년 광개토대왕과 그의 군사가 평원을 가르며 후연의 수도 용성(요령성 조양)을 침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왕의 나이 22살이다. 고구려와 수, 당 사이 오랜 전쟁이 598년 고구려의 용성 공격으로 시작되었다는 그간의 인식을 포박하기 위함이다. 이미 광개토대왕에 의해 국제상업도시로 길러지고 이름조차 용성에서 유성으로 바뀐 고구려의 도시를 후연 다음의 수나라가 590년 침략한 게 전쟁의 도화선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598년은 영양왕이 유성을 무력으로 되찾고, 이에 수나라가 35만 대군을 이끌고 보복 공격에 나선 해인 것이다. 이런 깜냥의 ‘역사 바로 세우기’가 글 곳곳을 살찌우는데,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현실성 없는 수장 전략이 아닌, 강 아래 섬을 덫 삼아 우월적 공격을 펼침으로 가능했다는 분석적 상상 따위가 그렇다.
백제, 신라, 그리고 수와 당이 집중 조명됨은 물론이다. 주변국과 맞물려 밀고 당겨지는 역사의 장대한 물줄기 속에서 발견되는 상관성이야말로 ‘진실’을 ‘사실’답게 하는 힘일 터다. 다만 핵심 인물 계백, 김유신, 당태종인 이세민 등 몇몇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고루함이 없지 않다. 그만큼 입체감이 줄어든다. 외항선원 출신인 정씨가 10여년 발품을 들여 내놓은 첫 작품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