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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장마당’ 돋보기로 본 북녘의 속살

등록 2006-04-07 18:02

90년대부터 북한의 ‘장마당’은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삶의 현장이 됐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확산된 시장적 질서는 ‘도시정치’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체제 안정성을 크게 뒤흔들고 있다. 사진은 북한 주민이 한 도시 아파트 단지 빈터에 자리를 펴고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파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90년대부터 북한의 ‘장마당’은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삶의 현장이 됐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확산된 시장적 질서는 ‘도시정치’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체제 안정성을 크게 뒤흔들고 있다. 사진은 북한 주민이 한 도시 아파트 단지 빈터에 자리를 펴고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파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탈북주민 85명 심층면접한 실증 보고서 ‘북한 도시의 위기와 변화’
경남대 극동연·북한대학원 펴내

‘한국학’의 중요한 영역 가운데 하나가 북한 연구다. 세계 지성·학문계에서 한국 학자들이 주도적으로 담론을 이끌어갈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야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다. 기왕의 연구들이 대부분 북한 사회주의 역사 또는 남북관계 정책연구 등에 집중됐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북한학’의 얼개는 ‘디테일’에 약하고 아직 엉성하다. <북한 도시의 위기와 변화>(도서출판 한울 펴냄)는 그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를 일러주는 좋은 예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와 북한대학원 소속 연구진들이 함께 엮었다. 이 책은 1990년대 청진, 신의주, 혜산의 도시 변화 과정을 다루고 있다.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과 이에 즈음한 자연재해 등으로 북한은 경제위기, 사회해체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청진, 신의주, 혜산은 중국과 마주한 곳이다. 고난과 맞닥뜨린 북한 주민들이 죽음과 탈출 가운데 선택지를 골라잡을 여지가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탈북자의 대부분이 이 지역 출신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식량난의 직접적 피해를 입은 농촌이 아니라 왜 하필 ‘도시’에 주목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에 이 책을 쓴 연구자들의 ‘혜안’이 숨어 있다. 북한은 ‘도시 정치’의 작동을 근본으로 삼고 있다. 각 지역의 주요 도시들을 축으로 중앙정부의 관료적 조정과 지방의 자력갱생이 맞들어진다. 이 메카니즘이 북한을 지탱한 기본이었다. 연구자들은 90년대 북한 국경 도시의 재구조화 과정을 연구함으로써 북한 체제의 내부적 변화를 고찰한 것이다.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연구자들은 90년대 북한의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핵심은 시장적 공간의 확산이다. “계획경제가 파탄되고 국가배급제가 마비되면서 이전까지 북한의 도시정치를 뒷받침했던 조직화된 의존관계와 집단주의가 약화”된 것이다.

일종의 시장인 ‘장마당’은 정치적 집단주의가 붕괴하고 경제적 개인주의가 확산된 현장이었다. 장마당은 “90년대 이후 물리적인 생존이 걸려 있는 치열하고 절박한 삶의 공간”이 됐다. 관료와 지식인은 물론 공장 노동자와 농민들까지 “과거 도시정치의 효과적 작동에 의해 보장받았던 기초 소비재 구입, 의료·복지 혜택 등의 문제를 장마당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 결과 “체제순응적 정서와 공적 관계망이 침식되고 체제비판적 정서와 사적 관계망이 발전하면서, 도시정치의 의식기반과 사회적 관계망을 변질시켰다.”

이들의 연구는 ‘북한 붕괴론’을 강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민들의 태도에 일정한 변화가 보이지만 북한 지도부의 갈등 통제양식과 대응수단이 건재하다”고 분석했다. 탈북주민 85명에 대한 심층면접을 기본삼아 이뤄진 객관적·실증적 연구는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들여다보는 길로 독자를 이끈다. 냉정하고 무미건조한 연구가 오히려 북한의 현실에 대한 연민을 길어올리는 것은 이 책만이 가진 묘한 힘이다.

연구진은 북한 도시들이 어떻게 사회주의적으로 건설됐는지를 살핀 <북한 도시의 형성과 발전>을 지난 2004년에 내놓으면서 새로운 방법론의 물꼬를 텄다. 이번에 나온 <북한 도시의 위기와 변화>는 그 후속편인 셈이다. 이 야심만만한 연구진들은 북한이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내세운 2002년 7·1조치 이후의 도시 변화에 대해서도 곧 연구성과를 내놓을 계획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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