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우/도서평론가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내 안의 유인원> 프린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김영사 펴냄. 2005년
이른바 ‘이기적 유전자’론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마음이 몹시 불편해진다. 인간이 고작 유전자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이해되는 점에서 그렇거니와, 결과적으로 경쟁의 가치를 최고의 선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원했든 그러지 않았든, 인간을 적자생존의 밀림에 몰아놓고 만 것이다. 프란스 드 발의 <내 안의 유인원>은 그 불편함이 이유 있다며 논쟁적인 지적 탐구를 자극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그동안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본성론이 세를 얻은 데는 그럴만한 근거가 있다고 분석한다. 그 첫번째는 과정과 결과가 서로 비슷해야 한다는 ‘베토벤의 오류’에서 찾는다. 자연선택은 무자비하고 가혹한 제거과정인 만큼 잔인하고 이기적인 생명체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다. 두 번째는 역사적 배경에 두고 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서구학자들은 문명의 심장부라 여긴 곳에서 자행된 야만행위에 눈감을 수 없었다. 억제력이 없다는 동물의 본성이 인간의 유전자 속에 숨어 있지 않나 톺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지극히 정치적인 맥락에 놓여 있다. 대처와 레이건이 주창한 신자유주의의 교리와 이 본성론이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연대와 이타의 가치는 부정되고, 경쟁과 이기의 가치가 시대정신이 되고 말았다.
인간과 무척 가까운 친척으로 알려진 침팬지는 이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마스코트였다. 일반적으로 침팬지는 수컷중심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데다 폭력적이고 권력에 굶주린 동물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이같은 통념에 저항하기 위해 내세운 동물은, 인간의 또다른 친척으로 판명된, 보노보이다. 암컷중심의 에로틱하고 낙천적인 데다 평화적인 천성을 지닌 ‘히피족’이다. 지은이는 각별히, 침팬지가 권력으로 성문제를 해결하는데 반해 보노보는 성으로 권력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을 돋을새김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인간의 침팬지적 속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침팬지와 우리의 유사점은 부정할 수 없고, 은근히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단, 침팬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바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말대로 진화가 기록된 자연이라는 책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또는 경쟁을 화두로 삼는 무리와 연대를 지선으로 섬기는 무리 모두를 만족시킨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유독 침팬지에 빗대어 온 과학담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과학이 지배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쳤는지 혹은 그 반대인지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경쟁사회를 뒷받침하는데 ‘이기적 유전자론’이 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노보는 이타적이고 협동하며 평화지향적인 성격도 진화의 산물임을 입증한다. “할 수 없이 뭉쳐 살게 된 이기적인 독불장군으로 인간을 그리면서 이러한 깊은 유대관계를 무시하는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영장류의 진화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본성의 유전적 프로그램을 맹목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전자는 실마리와 암시만을 줄뿐, 우리는 ‘즉흥 연기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세계화의 광풍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양극화현상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지금 본성의 거울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침팬지일까 보노보일까.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더불어 살아가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지평이 열릴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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