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고정관념·불평등 지적하면
예민하고 성가신 존재로 낙인
실천적 독립연구자 사라 아메드가 제시하는 생존법
예민하고 성가신 존재로 낙인
실천적 독립연구자 사라 아메드가 제시하는 생존법
yoihoi50@hani.co.kr, 게티이미지 뱅크
쉽게 웃어넘기지 않는 이들을 위한 서바이벌 가이드
사라 아메드 지음, 김다봄 옮김 l 아르테 l 3만2000원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2018년 ‘미투’ 운동을 거치면서 더 많은 여성이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 사회의 젠더 불평등을 명료하게 인식하게 됐다. 그 결과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용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페미니즘은 최근 한국 사회의 변화를 부추기는 한 축이 됐다. 그러나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이에 반발하는 흐름 또한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극단적인 여성혐오 발언이 쏟아지는가 하면 일부 남성들은 ‘페미니즘=남혐’이라는 비뚤어진 시각으로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고 위협한다. 또 남성 이용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게임업체들은 일부 남성들의 잘못된 시각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채용 면접 등에서 ‘페미 사상 검증’까지 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거나 페미니즘에 관심 있다는 이유로 채용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칫 주춤하고 실천의 의지가 꺾일 수 있는 여성들에게 ‘페미니즘 배터리’를 고속으로 충전시켜줄 만한 책이 나왔다. 바로 페미니스트 철학자이며 실천적 활동가인 사라 아메드의 ‘페미니스트 킬조이’라는 책이다. ‘킬조이’(killjoy)를 그대로 해석하면 ‘기쁨을 죽이다’란 의미다. 의역하면 ‘파티의 흥을 깨는 사람’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 ‘산통을 깨는 사람’ 정도가 되겠다. ‘페미니스트 킬조이’라고 하면 페미니즘과 관련된 말이나 행동으로 분위기를 깨는 사람을 지칭하게 될 텐데, 사라 아메드는 이 책을 통해 페미니스트를 조롱하거나 불편해하는 사람들에게서 이 단어를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평소 일상에서 ‘페미니스트 킬조이’라고 불리던 저자는 되레 자신이 이 단어를 언급하면서 대중에게 기꺼이 ‘페미니스트 킬조이’가 되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페미니스트 킬조이가 되는 것=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내세워 이 표현 속에 들어 있는 부정성을 긍정성으로 변환해버린다. 이 얼마나 저돌적이며 능동적이며 발칙한 발상인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페미니스트들이 젠더 불평등에 기초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나 기쁨을 와장창 깨버려도 괜찮다고 용기를 준다는 점에 있다. 성고정관념적인 용어를 지적하거나 평등하고 공정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은 흔히 ‘예민한 사람’ ‘성가신 사람’ ‘센 여자’ ‘불편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책에서 대표적인 예로 든 것처럼 행복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가족 중 누군가가 “아기들에게 젖이 필요하니 여자들은 동등해질 수가 없어”라고 말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페미니스트라면 그 발언이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식사 자리는 싸해지면서 그 말을 한 당사자는 ‘저녁 식사 분위기를 망친 사람’이 되고 만다. 문제를 지적했는데 되레 자신이 문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페미니스트들이 만나게 되는 모순적 상황들을 공유하면서 “페미니스트 킬조이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기꺼이 불행을 초래한다는 의미라면” 의지를 갖고 그렇게 하자고 말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주의에 관해 이야기할 ‘의지’가 있는 것이라고 해설하면서 말이다. 어떤 것을 할 때 접근 동기를 갖느냐 회피 동기를 갖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지차이가 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페미니스트 킬조이’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프로젝트로 접근한다면, 여성들이 되레 ‘페미니스트 킬조이’가 되는 상황을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저자 사라 아메드. 아르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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