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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몸뻬 바지부터 자율주행차까지…물건들로 본 한국인 이야기 [책&생각]

등록 2023-12-15 05:00수정 2023-12-15 09:56

비벼빠는 세탁기 이제 그만 / 엘지 '대포물살.' 개발 판매
비벼빠는 세탁기 이제 그만 / 엘지 '대포물살.' 개발 판매

잡동산이 현대사 1~3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전우용 지음 l 돌베개 l 각 권 2만5000원, 세트 7만5000원

세상 만물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역사학자 전우용이 펴낸 ‘잡동산이 현대사’는 그 가운데서도 한국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온 사물 281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노작이다.

지은이는 물건이 변화시킨 우리 삶의 양태를 면밀하게 살피는데, 이는 물건들의 역사를 통해 한국인의 의식과 습속의 변화, 사회의 발전상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들어 비로소 한국인의 삶에 등장하기 시작한 세탁기, 싱크대는 빨래·조리 등 집안일을 여성의 것에서 가족 모두의 것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여성 인력을 노동시장으로 이전하는 산업정책과 조응한다. 툇마루 정담을 주재하던 수염 기른 어르신을 밀어낸 텔레비전은 표준화된 산업화 계몽을 전파함으로써 국가를 가부장의 자리에 위치시켰다. 그리고 이들 가전제품이 가득 구비된 아파트야말로 20세기 대한민국이 설계한 표준, ‘중산층’의 탄생을 상징한다. 책은 이런 사물들이 어떻게 등장했고, 어떻게 우리 삶에 뿌리 내렸으며, 이후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는지를 원고지 5천 페이지 분량에 걸쳐 빼곡히 적고 있다.

특히 지난 1세기 남짓 극적인 생활상의 변화를 겪은 한국인들에게 이야기의 의미가 각별한데, 그 안에 식민주의·서구화·개발연대·민주화·정보화까지 숨가쁘게 생존해 온 격동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몸뻬 바지부터 자율주행자동차까지 한국인의 삶을 변화시킨 물건들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재구성한 귀납식 보고서라 할 수 있겠다. ‘일상·생활’, ‘사회·문화’, ‘정치·경제’로 범주화한 물건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은이의 통찰을 습득할 좋은 기회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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