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말린 날들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
서보경 지음 l 반비 l 2만5000원
“우리는 그저 앞줄에서 먼저 바이러스를 만난 것뿐입니다. 그래서 뒷줄에 서 계신 당신들께 알려드립니다. 우리가 먼저 경험한 것들을, 느끼는 것들을, 필요한 것들을 말이지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인권운동에 참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는 책 서문에서 ‘뒷줄’의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앞줄’이 ‘뒷줄’에 건네는 말은 ‘감염’이 공동체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한 지금 반드시 필요한 성찰을 하게 한다.
저자는 이제는 ‘관리가능한 질병’이지만 여전히 사회적 낙인이 찍혀 움츠러드는 HIV·AIDS와 감염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성찰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HIV 감염인은 불온한 개인이 아니라 앞줄에서 바이러스를 먼저 만난 사람일 뿐이다. 이는 코로나19 방역을 목적으로 번호가 붙고 동선이 공개되며 낙인이 찍힌 확진자들과 연결된다. 앞줄과 뒷줄의 구분은 감염은 ‘공동체의 일’이고 감염자는 한발 앞서 겪은 사람으로서 사회에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한다.
저자가 ‘감염되다’는 말을 대체하자고 제안하는 ‘휘말리다’는 감염에 대한 낙인과 차별의 프레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휘말린’ 상태는 주체가 능동적으로 모든 걸 선택하여 야기한 상황도 아니고, 무엇을 하도록 혹은 느끼도록 직접적으로 강요당한 상황도 아니다.” 바이러스와 함께한다는 이유로 배제된 이들은 단지 감염에 휘말렸을 뿐이고, 이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우리는 다른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