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외나무다리 마을 무섬 알방석댁 이야기
한국 격동기(1930~1970)를 시골여인의 관점으로 기록한 자화상
박명서·김규진 지음 l 열린세상 l 1만5000원
“환갑을 몇년 앞두고 나의 희로애락을 대강 기록해보고자 한다. 배운 게 없어 여러모로 부족하나 어릴 때부터 고생하고, 산전수전 다 겪어온 내 일생 경력을 기록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1917년 경북 영주 방석마을에서 태어나 열여섯 나이에 인근 외나무다리마을(무섬마을)로 시집와 평생을 산 박명서 할머니는 결심했다. 그 시절 대개 그랬듯 시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농촌 일”이었다. 첫째 둘째 아들을 먼저 보내는 등 아픔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행복했고 뿌듯한 때가 많았다. 바쁜 농사일, 집안일 건사하며 8남매를 낳아 키웠고, 성실함과 뛰어난 재봉틀 솜씨로 논도 사고 밭도 사서 집안을 일으켰으니 말이다.
당시 한반도를 휩쓴 굵직한 사건들도 잠깐씩 언급된다. “같은 민족끼리 죽이고 하는 싸움은 정말 이해가 안 되고 무서웠다.”(한국전쟁) “6·25 동란이 끝나고 세월이 좀 안정되는가 싶었는데 나라에는 온통 젊은 학생들이 데모를 해서 독재자들을 몰아내었다는 소문이 시골에도 자자했다.”(4·19혁명) “이웃 마을 어떤 이는 일본 앞잡이 노릇하며 재산도 많이 모아 그 자손 대대로 잘사는데, 우리 양반마을의 독립 운동가들의 자손들은 대대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아부지가 안 계시니 그 자녀들은 초라하기 그지 없”더란다.
돌도 지나기 전에 열나고 얼굴이 새카매지더니 숨이 넘어가 묻어주려고까지 했던 넷째 김규진(75)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1977년 세상을 뜬 어머니가 남긴 기록을 뒤늦게 발견해 펴낸 자서전이다. 어머니를 그리는 노교수의 사모곡이기도 한 셈이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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