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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소설 후기에 새겨진 “매일 윤석열 욕하면서 지냅니다”

등록 2023-10-06 05:00수정 2023-10-07 16:46

‘소설 보다: 가을 2023’에 선정되어 작품이 실린 작가 전하영, 김지연, 이주혜(사진 왼쪽부터). 문학과지성사는 2018년부터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해 단행본으로 출간 중이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소설 보다: 가을 2023’에 선정되어 작품이 실린 작가 전하영, 김지연, 이주혜(사진 왼쪽부터). 문학과지성사는 2018년부터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해 단행본으로 출간 중이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소설 보다: 가을 2023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l 문학과지성사 l 3500원

중단편 세 꼭지로 엮인 소설집 ‘소설 보다: 가을 2023’에서 특히 시선을 붙든 문장이 둘이었다. 먼저, “외로움이 간절했다.”

전하영의 소설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는 미혼여성 신숙희가 두달 전 마흔아홉이 되었고, 조만간 쉰이 되는 이야기다. 이 무미한 서술이 한국 사회에서 담는 의미는 실로 무한하고, 전하영은 접혀 감춰진 주름 펴듯 그 의미들을 펼쳐 보인다.

숙희는 관대한 연애주의자다. 한때 여자와도, 스무살 연상의 남자와도 만났고, 현재 16살 연하의 남성과 관계 중이다. 더 많은 남성과 섹스해왔고 사십대 초반이 되고선 혹 실수로라도 아이가 생기진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아줌마’란 호칭이 기습해온 건 삼십대 중반. 끊임없이 다퉈오다 겨우 상처를 받지 않게 된 찰나, 두살 아래 친구 윤미가 할머니가 되었단 소식이 날아든다. ‘수컷 한국사회’에서 때로 거추장스럽기도 했던 ‘젊은 여자’의 태그를 떼어 평안해지니 이윽고 ‘늙은 여자’로 전락한 격. 무엇보다 스스로 “모든 것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이 생경함”만이 유일한 ‘새로움’이라는 생각에 숙희는 자조한다.

쉰살의 여자는 쉰살의 남자가 아니라서, 연하 이성과의 관계를 통해 일종의 성취감 너머 자기혐오와 자기객관화, 말하자면 자기검열의 지속 상태에 자타의로 놓인다. 차라리 “외로움이 간절”해진다. 다만 이 ‘외로움’은 ‘지루한 새로움’의 대척에 있다. 욕망의 알짬과 같은 것이다. 말미 윤미의 손녀를 감싸 안으면서 느끼는 생명의 온기, 마음속 이는 동요도 새삼 결혼, 육아, 가족 따위 ‘정상성의 삶’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그러나 잃어버린 온갖 것들에 대한 기억”으로 아쉬워 거듭 생동하는 탓이다. 완경 후 ‘성장통’이랄까.

사회학과 영화를 공부했던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의 내면은 그가 아직 닿지 못한 세계인데도 조밀하여 잡힐 듯하다. 2019년 마흔살에 등단한 이래 작품을 주로 채웠던 2030대 여성, 그리고 막판 “혼자 남겨지는” 여성의 형상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인물이 바로 숙희다. 숙희는 난희(등단작 ‘영향’의 주인공)의 미래인 셈이다.

다른 한 문장은 “매일 윤석열 욕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는 김지연 작가의 인터뷰 후기다. 제목대로, 반려할 수 있는 게 빚밖에 없는 당대 젊은이들의 세태를 은유한 작품 ‘반려빚’을 실었다. 전세사기 피해자 연인을 둔 죄로 빚쟁이가 되고 “빚진 것 없이 죽고 싶다”는 소망만 남은 정현의 다단한 심리를 대변한다. 김 작가는 5일 한겨레에 “지금 젊은층 세대가 빚 없이 누리는 삶이 가능한가 많이 생각한다”며 “작가로서, 출판사 편집자로서, 이 정부 들어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보호받지도 못하다는 생각에 추석 때도 계속 윤석열 욕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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