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에 곰이라니
추정경 지음 l 다산책방(2022)
김희경의 ‘나는요’는 함께 읽고 자기 소개하기 좋은 그림책이다. ‘나’라는 사람의 개별성을 동물에 빗대어 들려준다. 우리 중에는 사슴처럼 겁이 많거나 나무늘보처럼 나만의 공간에서 마음이 편한 사람이 있지 않은가. 동물에 비유하면 나의 캐릭터가 선명해진다.
추정경의 ‘열다섯에 곰이라니’는 비유에 머물지 않고 아예 멀쩡한 십 대를 동물로 만들어버리는 작품이다. 대체 왜 멀쩡하던 청소년이 동물로 변해버렸는지, 과연 사람으로 돌아오긴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발한 설정을 동력 삼고 순하디순한 태웅과 날렵한 동생 영웅 그리고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누나의 캐릭터가 만나 작품은 유쾌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열다섯 태웅은 천성이 소심하고 겁이 많다. 오로지 먹는 일에만 힘을 써 한달치 급식 메뉴를 외우고 다닌다. 이런 태웅이 수학시험에서 56점을 맞은 날, 누나는 밥상을 앞에 두고 집요하게 잔소리를 퍼붓는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못 들은 척 명이장아찌에 삼겹살을 싸먹어야 태웅다운 일이다. 그날 이상하게도 태웅은 마음이 저려왔다. 저도 모르게 “밥 안 먹어!” 소리를 지르고 저녁밥을 굶고 만다.
다음날 태웅은 갈색곰으로 변해버렸다. 가족들은 태웅을 몰라보고 그 와중에 동생 영웅은 이 광경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생중계한다. 이를 보고 들이닥친 경찰특공대에게 체포된 태웅은 곰 농장으로 보내지며 소동을 겪는다. 태웅의 동물화를 시작으로 세희와 지훈이가 비둘기가 된 사연, 서우가 기린이 된 이유, 상욱이 하이에나가 되고, 가출한 국경이 들개가 된 이야기가 연작소설 형태로 하나둘 펼쳐진다. 곰이 된 태웅은 동생을 위해 과거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싸움을 하고, 라텔(벌꿀오소리)이 된 동생 영웅은 들개 무리와 일전을 치르며 동물화된 십 대의 사연이 얽힌다.
작가는 십 대가 동물화되는 이유를 “누구나 거쳐야 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아직 감정의 지배를 더 많이 받는 십 대는 제 본성을 어쩌지 못할 때가 많다. 이 혼돈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를 보통 사춘기라 한다. 작품은 이를 동물화로 은유하는 셈이다. 십 대가 지닌 본성은 그대로 동물화에 반영된다. 느긋하고 유순한 성격에 잡식성인 태웅이 곰이 된 건 당연지사다. 날쌔고 영민한 동생 영웅이 작고 성질 사나운 싸움꾼 라텔로 변한 것도 자연스럽다. 겉모습만 달라질 뿐 본질은 그대로다. 다만 동물화의 시기를 어떻게 겪느냐에 따라 곧 사람으로 돌아올지 혹은 그대로 동물로 남을지가 달라진다. 한바탕 소동을 치른 태웅은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거짓말처럼 사람의 몸으로 돌아온다. 호되게 앓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가는 것이 사춘기가 아닌가.
기발한 상상력과 호흡이 짧은 단편으로 이뤄져 십 대가 읽기에 부담이 없는 것이 장점이다. 다만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정작 주인공인 태웅의 서사가 약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혹시 동물화된 십 대를 만나거든 의심하지 말고 곁을 지켜주길. 곧 사람으로 돌아온다. 중학생.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