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송편과 전, 갖가지 과일들이 정성스레 추석 차례상에 올려져 있다. 이정아 기자
오정연 지음 l 허블(2021) 제사란 무엇인가?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는 의식이다. 조선 시대에서 유래했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엔 어떤 사람들이 제사를 지냈는가? 주로 양반 계층이 지냈다. 제사는 조선에 사는 이들 중 일부 특권층이 행했던 습속인 것이다. 이제 시점을 옮겨보자. 현대 국가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가? 국민 다수가 지낸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누구든 해야 마땅한, 마치 조선 시대부터 대대로 내려온 한반도 주민 모두의 풍습인 듯 여겨진다. 정작 조선 시대엔 인구의 일부만이 행했던 풍습이 현재 이 땅에서 전 국민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의례’가 된 데에는 여러 역사적·사회적 동인이 있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그 원인을 ‘신분 상승 욕망’에서 찾는다. 해방 후 농지개혁과 전쟁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사건을 맞으면서 한반도에서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기존의 ‘신분제’가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 동안 형식적으로 폐지되었으나 관습과 의식의 영역에서 여전히 굳건하게 유지되던 신분제의 구습이 토지소유권 분배와 전쟁으로 인한 거주지 이전으로 인해 철저하게 파괴된 것이다. 이에 따라 양반과 상민 간 구분이 사라진 한반도에서 너도 나도 ‘양반’의 후예라 주장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양반의 후손임을 증명하기 위해 모두들 열심히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2023년 현재, 종교적인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명절 때 여행을 가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주류 매체와 국가 차원의 홍보물에서는 제사 혹은 차례를 지내는 풍경을 명절의 기본 포맷으로 내보낸다. 신분 상승 욕망이라는, 본질과 동떨어진 다른 성분이 주입되어 완성된 관습이 여전히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체성’으로 공고히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라는 습속과 그에 어린 정신을 한국인의 주요 디엔에이(DNA)로 여기는 이런 사고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2030년? 2040년? 아니면 2050년까지도 이어질까? ‘분향’은 화성으로 이주해 정착한 미래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그린 에스에프(SF)소설이다. 소설은 정착한 한국 화성민들이 보내는 명절 풍경을 상세하게 펼쳐보인다. 화성에 세워진 대한민국 영사관에 ‘한가위 한민족 차례 분향소’가 차려지고, 모여든 200명의 한국인 화성민들은 대형 모니터와 웹캠을 통해 원격 차례를 지낸다. 지구에 살던 시절 ‘돌아가신 남의 부모 식사 챙기려고 일정을 맞추느라 마음을 쓰던’ 며느리는 화성에서도 ‘버퍼링 걸리고 화면이 저화질로 깨지는’ 가운데 4분30초씩의 틈새를 두고 지구에 남은 가족과 교신하며 원격으로 차례를 지낸다. 한국인이란 무엇인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이 기발한 소설이 던지는 물음을 압축한다면 이런 문장들이 될 것이다. 소설은 본래의 정신에 충실하기보다 그저 사회적 압력에 휘말려 행해왔던 관습이 질기게 살아남아 한 국민의 ‘정체성’이 되는 과정을 통렬하게 희화화한다. 그러나 상징성을 띤 사회 현상에 비정하게 비판의 칼날만 들이대는 것은 아니다. 해묵은 관습에 기대지 않고는 도무지 ‘만남의 장’을 만들어낼 수 없는 형해화된 공동체가 향수를 가지고 ‘제사’에 매달리게 되는 메커니즘도 연민의 시선으로 함께 그려낸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