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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한미동맹 없는 한국을 상상하자”

등록 2023-09-22 05:00수정 2023-09-22 09:43

2022년 5월22일 방한 중에 폴 라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을 만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2022년 5월22일 방한 중에 폴 라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을 만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벌거벗은 한미동맹
미국과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이유
김성해 지음 l 개마고원 l 2만2000원

한미동맹은 절대선인가. 1953년 10월1일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 70년을 맞아 한미동맹에 대해 발본적으로 질문하는 책이 나왔다. 미국 조지아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를 받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언론학 박사를 받은 김성해 대구대 교수가 쓴 ‘벌거벗은 한미동맹’이다. 부제가 가리키는 대로 이 책은 ‘미국과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이야기하면서 ‘한미동맹 없는 한국’, ‘미국 없는 한국’을 상상해보자고 제안한다. 지은이는 왜 한미동맹 없는 한국을 상상해야 하는지를 380쪽에 이르는 본문에서 상세히 이야기한다.

지은이가 미국과 헤어져야 할 첫 번째 이유로 제시하는 것은 ‘동맹 비용’이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느라 군사기지를 공짜로 빌려줘야 하고, 미군 주둔에 필요한 분담금을 내야 하고, 미국산 무기 수입의 큰손이 돼줘야 한다. 이런 기회비용 외에 ‘포기해야 하는 기회이익’도 있다. 한미동맹 탓에 동맹 바깥에 있는 수많은 선택지의 상당 부분을 접어야 한다. 수교 이래 한국의 최대 무역흑자국이던 중국이 2016년 미국의 요구에 따른 사드 배치 이후 30년 만에 큰 폭의 무역적자국이 된 것이 대표적이다. 동맹의 책임 때문에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휩쓸릴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대만에서 전쟁이 날 경우 한국이 이 전쟁에 말려들 위험이 커지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동맹이 강화될수록 적이 더 많아지고 더 강해진다’는 역설이다. 적을 규정하는 것은 미국이고 한국은 미국의 뜻을 수동적으로 좇아야 한다. 미국이 경쟁자인 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상정할 수는 있지만, 한국의 이해관계는 미국과 다르다. 한국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적으로 지낼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

지은이는 미국이 한국을 지켜준 전쟁의 은인이라는 한국인의 믿음도 근거가 부실하다고 말한다.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것은 맞지만 미국의 행동을 보면 전쟁을 속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전쟁 초기에 미국이 유엔 결의안을 무시하고 38선 이북으로 밀고 올라간 뒤로 내전이 국제전으로 비화했고 한반도가 초토화했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보도연맹 학살, 노근리 학살, 신천 학살 같은 수많은 학살 사건으로 수십만명의 무고한 목숨이 죽어 나가는 데 직간접적 책임이 있다. 이 전쟁이 미국에 손해만 입힌 것도 아니다. 미국은 전쟁 내내 대규모 군수물자 생산을 통해 경기 침체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미국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후견인이었다는 한국인들의 믿음도 사실과 맞지 않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미국이 한국에 추구한 것은 낮은 단계의 근대화였을 뿐이다. 더구나 미국은 공산주의 위협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국민을 학살한 독재정권도 지지했다. 미국 덕분에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했다는 것은 허구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일제강점기의 ‘황국신민’ 경험이 해방 후 미국 숭배로 전환됐다는 주장도 편다. “강화된 한미동맹은 다르게 말하면 ‘동일화’다. 불가침의 신념이 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천황제와 닮았다. 과거 귀축영미, 즉 ‘짐승과 마귀’였던 미국과 영국을 대신해 지금은 러시아와 중국이 들어섰다.” 한국이 미국을 일제의 천황처럼 떠받들며 따르고 있다는 얘기다. 전시작전권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도 그런 자주성 결여를 보여준다. 나토의 경우 미국이 통제할 수 있는 대응군 규모는 4만명(2022년 2월 기준)밖에 안 되지만, 전시작전권을 쥔 주한미군은 유사시 60만 한국군을 지휘할 수 있다. 자국 군대를 모두 미국에 맡기는 나라를 자주국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지은이는 이런 이유를 들어 한미동맹을 해체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이익이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는가? 지은이는 남한과 북한이 공동으로 중립국화를 이루는 것이 최상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이 지배하는 일극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국제사회가 점차 다극질서로 가고 있으며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체제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 이런 대안을 실행하는 데 유리한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제안하는 남북 공동의 중립국화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길이라 실현하기 쉽지 않은 방안이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 문제와는 무관하게, 미국 맹종의 주술에서 풀려나야만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지은이의 고언은 경청할 만하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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