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음주 시인 비대면 진찰록
랴오보차오 지음, 김성일 옮김 l 시대의창 l 2만2000원 ‘취했다 다시 깨고(醉復醒)/ 깨면 또 시를 읊고(醒復吟)/ 시를 읊으면 다시 마시고(吟復飮)/ 마시면 또 취한다(飮復醉)’(백거이 ‘취음선생전’) 자고로 술은 문인, 예인들 창작의 원동력이었다. 차를 마시며 도 닦듯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도 있었지만, 술로 경직된 몸과 마음을 풀어헤치고 일필휘지로 뭔가 읊어 낸 이들이야말로 뭇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며 풍류가로 인정받았다. 중독치료 전문의인 저자는 중국 시문학의 전성시대였던 당·송시대 문인 14명의 시, 사를 살펴 이들의 음주 스타일을 분석하고 신체, 정신상태를 진찰한다. ‘주태백’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자타공인 애주가 이백은 알코올과 문학혼이 결합된 최고의 경지를 보여줬으며, 이태백과 쌍벽을 이루는 중국 최고의 시인 두보는 그보다는 덜 마셨지만 극심한 실업 스트레스를 술로 달래곤 했다. 소식은 좌천, 귀양 때마다 각종 술담그기에 도전하는 애주가였지만 주량은 맥주 한캔에도 못 미쳤다. 여러 음주 특색에서 중독의학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10대 때부터 술에 눈뜬 여성 시인 이청조를 통해 소년 음주와 여성 음주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술에 취해 말 타고 가다 우물에 빠지고도 그냥 곯아떨어진 하지장을 통해 장기간 음주, 노년 음주를 환기하는 식이다. 그래서 그 끝은? ‘이제는 술 마시면 감정이 격해 오는 사람으로 변했다오’(如今變作酒悲人, 백거이)라는 회한도 있지만, 하지장은 섬망 증세에도 86살까지 장수했고, 송나라 최고 주량을 자랑했던 석만경은 황제의 권유로 술을 끊자마자 숨졌다고 한다. 술의 세계는 이래저래 알쏭달쏭!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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