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책의 역사
뤼시앵 폴라스트롱 지음. 이세진 옮김.
동아일보사. 2만5000원.
뤼시앵 폴라스트롱 지음. 이세진 옮김.
동아일보사. 2만5000원.
잠깐독서
서기 79년 8월, 그리스 폼페이의 베수비오 화산이 불을 뿜었다. 녹아내린 용암이 인근 도시까지 집어삼켰다. 스토이시즘·에피쿠로스 철학 등을 담은 수많은 장서들도 마그마에 묻혀 단단한 망각 속으로 식어갔다.
문자가 발명된 이래 수많은 책들이 태어나고 소멸했다. 인류역사를 돌아보면, 천재지변보다도 인간에 의한 책 파괴가 훨씬 많았고 철저했다. 침략자들의 방화·약탈에서부터, 종교적 절대주의에 의거한 배척, 절대권력을 쥔 지배계급의 분서, 혁명의 회오리나 폭동까지 그 유형도 다양했다.
<사라진 책의 역사>(동아일보사 펴냄)는 이같은 책의 수난사를 낱낱이 기록한 책이다. 서지학자인 지은이는 특히 도서관의 명멸에 주목한다. 서기 3세기에 설립돼 600여년간 고대의 모든 지식을 축적했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산화는 신화로 남았다. “만약 이 도서관이 살아남았더라면 그리스도교의 번영에도 암흑의 시대(중세)는 훨씬 더 밝았으리라.”
비잔틴 제국의 수십만 장서들도 13~15세기 십자군과 투르크족의 침략으로 산산이 파괴되거나 흩어져버렸다. 진시황제의 분서갱유(213년)도 ‘책의 홀로코스트’에서 빠지지 않는다.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의 만행, 미군의 이라크 침공 등 강자의 무지와 탐욕이 빚어낸 도서(관) 파괴는 현대에도 그치지 않고 있다.
지은이는 우려는 인터넷과 유비쿼터스로 상징되는 첨단 IT기술이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에 닿아있다. “종이책은 머잖아 생산을 중단할 것이다. 대학생들은 전세계의 작품들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특수한 코덱스만 들고 다닐 것이다. 어쩌다가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이 옛날처럼 종이책을 들고 다니는 일도 있겠지만 그 역시 우글대는 문자들에 질려서 읽기를 포기해버릴 것이다.” 마치 미래 지식세계에 대한 묵시록처럼 들린다. 그 세계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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