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청일전쟁 때 벌어진 평양 전투의 모습을 정치적으로 선전할 목적으로 그린 일본 작가 미즈노 도시가타의 판화. 위키미디어 코먼스
‘언덕 위의 구름’과 일본인의 역사관
와타나베 노부유키 지음, 이규수 옮김 l 삼인 l 1만8000원 와타나베 노부유키(68)는 일본 정부가 감추려 하는 근대사의 어두운 비밀을 파헤치는 작업을 해온 일본 언론인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진실’은 최근 나온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에 이어 번역·출간된 와타나베의 일본 근대사 비밀 해부 작업이다. 지은이는 청일전쟁 종결 뒤 발간된 ‘일청전사’의 원본인 ‘일청전사 결정 초안’을 살펴 그 초안에 담겨 있던 내용이 대폭 삭제되거나 수정돼 ‘일청전사’에 실렸음을 밝혀냈다. 지은이는 핵심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불편한 사실을 은폐·조작하여 전쟁사를 편찬하는 작업은 ‘일청전사’에서 시작됐다. ‘일러전사’는 그런 생각과 경험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일본 육군 참모본부가 청일전쟁이 끝난 뒤 1904~1907년 사이에 모두 8권으로 발간한 ‘일청전사’는 청일전쟁사의 정본으로 여겨져 왔다. ‘일청전사’는 조선에 들어와 있는 청나라 군대를 몰아내 달라는 조선 정부의 요청을 받고 일본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기록했고, 일본 정부는 이 기록을 근거로 삼아 그 전쟁을 정당화했다. 대의명분이 분명한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밝혀낸 ‘결정 초안’의 내용을 보면 일본 정부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일본군이 서울 왕궁을 공격해 국왕을 사로잡고 정권을 전복해 강제로 얻어낸 의뢰였다는 것을 ‘결정 초안’은 명확히 기록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일청전사’는 일본군이 동학농민군을 학살한 사실도 싣지 않았다. “조선으로 건너간 부대가 명령받은 것은 재봉기한 동학농민군 섬멸이었다. (…) 죽창과 화승총밖에 없던 농민군의 희생자는 3만명에서 5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사실은 ‘일청전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일본군에게 명예롭지 않은 전투를 전쟁사에서 아예 지워버린 것이다. 나아가 ‘일청전사’는 전쟁의 실상을 과장하거나 왜곡해 일본 군대가 저지른 무모한 군사행동을 모범적인 성공 사례로 기술함으로써 일본군을 영웅화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청일전쟁은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27년 만에 한반도에서 일으킨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일본은 태평양전쟁의 패전까지 50년에 이르는 침략-전쟁 시대의 문을 열었다. 이 50년 전쟁의 출발점이 된 청일전쟁의 진실이 은폐되고 조작됨으로써 러일전쟁을 정당화할 토대가 마련됐다. 또 ‘일청전사’의 전례를 따라 러일전쟁의 진상이 감춰짐으로써 그 뒤의 다른 침략 전쟁을 예비했다. 지은이는 이렇게 조작된 전쟁사를 바탕으로 삼아 국민 교육이 이루어졌고 ‘일본은 패배한 적이 없는 특별한 나라’라는 신화적인 믿음이 일본 국민 속에 뿌리내렸다고 지적한다. 그런 환상이 일본을 중국 침략(만주사변-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끌고 가 끝내 제국의 패망을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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