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단편 ‘구경거리’의 삽화. 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중국혁명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 만화가 딩충(1916~2009)이 그렸다. 사진 선쥔, 글항아리 제공
첸리췬이 가려뽑은 루쉰의 대표작
루쉰 지음, 첸리췬 엮음, 신동순 외 옮김 l 글항아리 l 3만6000원 ‘중국 현대 문화의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루쉰(1881~1936)을 2023년 다시 읽을 만한 이유는 적지 않다. 흔히 거론되는 ‘아큐정전’이나 ‘광인일기’ 얘기가 아니다. 하나의 학문체계가 되었다 할 ‘루쉰학’에서의 권위자인 중국 학자 첸리췬(84)은 “루쉰 소설의 핵심”이 담긴 작품으로 ‘구경거리’(1925)를 꼽는다. 진실, 분노, 개입도 유보할 뿐인 ‘구경꾼’으로서의 대중심리를 풍자한 단편으로, 소설엔 사건이나 인과는 물론 인물의 이름조차 없다. 뙤약볕 베이징 텅 빈 거리에서 ‘식어버린’ 만두나 무료하게 파는 소년이 갑자기 길 저편으로 튀어나가며 이야기는 여문다. 순경의 포승줄에 매인 밀짚모자의 남자를 보겠다고 삽시간 모여든 구경꾼들의 심리가 눈빛과 동태만으로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범인의 죄가 무엇인지 물은 행인만 주변의 침묵과 눈총에 주눅 들어 이탈한다. 술렁임-심지어 순경, 범인도 구경꾼을 곁눈질하느라 분주해 보인다-이 고조되지만 어떤 소란도 벌어지지 않자 실망했다는 듯 다들 흩어진다. 어느새 본래 자리로 돌아간 소년 또한 잠꼬대하듯 “막 찜통에서 나왔”다며 “따끈따끈한 만두!”를 외친다.
중국 판화계의 거장 자오옌녠(1924~2014)의 ‘루쉰상’. 루쉰의 초상화 중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로 간주된다. 사진 글항아리 제공
1932년 11월27일 베이징사범대에서 강연하는 루쉰. 사진 저우링페이, 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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