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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여름 방학 숙제 노! ‘퀘스트’ 오케이!

등록 2023-08-04 05:01수정 2023-08-04 10:17

여름 방학 숙제 조작단

이진하 지음, 정진희 그림 l 사계절(2021)

매미 소리가 들린다. 뜨거운 여름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린이에게 “여름 방학에 뭐 하니? 시골에 안 가니?” 하고 물었다가 눈총 맞아 죽는 줄 알았다. 요즘 어린이가 학원에 가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다만 방학에 어디론가 떠났던 어린이가 생각나서 혹시나 하고 물었다. ‘그해 여름, 에스더 앤더슨’에 나오는 소년은 기차를 타고 삼촌 집으로 갔고, ‘검은 여우’의 톰은 이모네 집으로 갔다.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낯선 세계에 도착한 어린이는 놀라운 일을 겪는다. 어떤 소년은 길을 잃고 첫사랑 에스더 앤더슨을 만나고, 다른 소년은 숲에서 여우를 만났다. 어린이는 여름 방학을 빼앗긴 게 아니라 모험과 우정과 사랑을 잃었다.

‘여름 방학 숙제 조작단’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요즘 어린이의 여름 방학이라는 제한된 조건 아래 모험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모험의 소재는 방학 숙제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학 숙제를 잘해서 상을 받아 게임기를 얻으려는 속셈에서 일어난 소동이다.

준보와 구봉이는 방학 숙제를 잘하기 위해 1등 하는 구경수에게 숙제 공략법을 묻는다. 한데 구경수는 비법을 모른다고 딱 잡아뗀다. 알고 보니 숙제할 시간에 수학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라며 아빠가 대신해주거나 인터넷에서 돈 주고 샀던 것. 준보와 구봉이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공부 잘하는 구경수를 얼러 숙제를 한다. 세 어린이는 상을 탈 수 있을 법한 세 가지 숙제를 골라 하기로 한다. 우선 고른 건 동시와 관찰보고서다. 동시는 어울려 쓰고, 관찰보고서는 애완동물이나 곤충이 아니라 엄마와 똥을 대상으로 삼고 치밀하게 준비한다.

세 번째 숙제를 해야 하는데 준보는 슬슬 꾀가 난다. 엄마에게 현장체험 학습하러 간다고 만 원을 받아 게임방에 간다. 구경수는 친구랑 어울려 놀다 생전 처음 게임을 하게 되고 피시방에서 회오리 감자까지 맛보게 된다. 그리고 구경수가 한 말은 “엄마가 게임 하지 말라고 한 이유를 알겠어”였다. 노는 재미를 알아버린 모범생의 눈은 반짝거렸다. 셋은 돈을 다 쓰고 마지막 숙제로 ‘우리 동네 현장 체험 학습’을 즉석에서 만들어낸다. 지하철 전시회, 도서관, 마을버스 타고 동네 체험하기 등 돈 안 드는 체험을 하고 보고서를 쓰기로 한 것. 이제 세 어린이에게 숙제는 더이상 숙제가 아니다. 일종의 ‘퀘스트’ 같은 도전이다.

지겨운 숙제가 퀘스트로 변하자 “이렇게 숙제 열심히 해 본 거 처음이야” 소리가 나올 만큼 신나게 몰입한다. 누군들 억지로 하는 숙제가, 일이 좋을까. “과정이 보상이다” 같은 잠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준보는 처음으로 스스로 찾고 즐기는 숙제를 했다. 그렇다면 세 어린이가 신이 나서 한 여름 방학 숙제로 상을 받았을까? 천만에! 어른은 원래 ‘과정보다 그럴듯한 결과’를 중시하는 법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른도 세 어린이처럼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골라 즐겁게 숙제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니 결과에만 목을 맨다. 이번 여름 방학에는 준보처럼 꼭 하고 싶은 일을 딱 하나만 해 보길! 어떤 기억은 평생을 간다. 초등 중학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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