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소설가 김솔(2012), 정무늬(2016), 허성환(2021). 괄호 속은 신춘문예 등단 연도 또는 작품활동 원년. 박상우 작가(맨 오른쪽)는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해체하고 두 영역의 특성이 융합을 이루도록 돕기 위”해 2022년 1월 웹북 플랫폼 ‘스토리코스모스’를 출범했다고 소개했다. 사진 스토리코스모스 제공
전두엽 브레이커
고요한·권제훈·김솔·김은우·도수영·도재경·박유경·이상욱·정무늬·허성환 지음 l 스토리코스모스 l 1만5000원
국내 가장 오래된 순문학 정통 문예지인 <현대문학>이 에스에프(SF), 판타지 등 20편의 장르소설을 특집으로 연재 기획한 지 딱 1년이 된다. 지난해 7~8월호. 순문학의 최후 방어선이 허물어진 계절이라 여길 만도 하다. 하지만 장르문학과 순문학을 경계 짓는, 문단에서만 견고했던 ‘마지노선’을 독자들은 일찌감치 가벼운 마음으로 ‘활공’하고 ‘비행’해왔음을 최후 고백하는 시간에 더 가깝다.
스토리코스모스는 2022년 1월 이런 시류에서 만들어진 웹북 플랫폼이다. “한국문학의 낡고 고루한 흐름에 반전을 꾀하기 위해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해체하고 또한 그 두 영역의 특성이 융합을 이루도록 돕기 위한 출범”이라고 스토리코스모스 대표 에디터인 소설가 박상우는 말한다.
스토리코스모스에서 발굴하고 작가와 협의 개정해가며 소개해온 작품들 중 10선은 이런 취지에 대한 예시다. 첫 단행본 소설집 <전두엽 브레이커>다.
해체와 융합의 지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양단에 선 김솔의 ‘걷는 여자, 걷는 남자’ 그리고 허성환의 ‘전두엽 브레이커’일 것이다.
인간은 어째서 무너지지 않는가
‘걷는 여자, 걷는 남자’가 품은 궁극의 질문은 이것이다. 고루한 이 질문을 얼마나 낯설게 감각시키느냐가 순문학의 본령이라면, 김솔은 제 지분이 매우 뚜렷한 작가다. 지난달 펴낸 소설집 <말하지 않는 책>에 부쳐진, “김솔은 태어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쓴다”는 드문 찬사(박혜진 평론가)는 이 작품도 논거로 삼을 만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마냥 걷는 중국인 여자다. 1가구1자녀 정책 아래 태어난 어느 소작농의 맏딸이었다. 막내 남동생이 겨우 태어나자마자 사고로 죽었다. 이윽고 다락에 숨겨졌던 여동생이 ‘남자아이’로 처신하게 된다. 하지만 언제든 여성성이 노출되거나 언니가 자신을 대체하리란 두려움으로 괴로워한다. 동생의 지독한 불면을 여자는 지켜봐야 했다. 맨 먼저 태어나 맨 먼저 은폐되어야 했던 여자는 단 한 번도 태어난 적 없던 “자유”의 “유령”이 되기로 한다. 중국을 벗어나 캐나다까지 유랑하고, 그 험로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숱한 ‘유령’들의 도움으로 “고양이의 길눈과 낙타의 무릎을 갖게 되”며, 마침내 걷기에 최적화(?)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이른다.
김솔이 부조리의 ‘관념’을 포착하는 은유와 반어의 이면에선 죽은 것과 다름없다가 생존을 위해 미국으로 밀입국한 제3세계 여성의 ‘실재’ 삶이 선명히 투영된다.
“노동을 할수록 가난해지는” 까닭을 몰라 또한 살고자 미국으로 밀입국한 멕시코 남자. 그 또한 걷다 우연히 본 중국인 여자를 동정하여, 보호자가 되었다 직접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제국의 시대, 구조적으로 착취당하는 여자와 남자 사이 피할 수 없는 연대와 더 피할 수 없는 반목인 셈이다.
이는 마치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호모 사피엔스가 걸을 수 있는 모든 데까지 걸어 패배하지 않고, 마침내 생존력을 확장해가는 현 인류의 원형을 상기시킨다. 때로 ‘걷는 자’들은 권력과 자본의 발밑을 ‘기는 자’들일지언정 말이다.
기성세대의 위선에 대한 환멸로 뉴욕을 배회하며 사변하는 홀든 콜필드(소설 <호밀밭의 파수꾼>)가 미 중상류 가정 출신이 아닌 외국인 밀입국자라 상상해보면 어떨까. 여자가 느리게 걷다가 또 다른 위기를 겪기에 앞서 ‘복선’은 어떤 징후적 사건이 아니다. 김솔은 대신 ‘혈류의 속도’보다 “늦게 움직이는 존재”의 의미나 사변한다. 사태로 사태를 암시하는 게 아니다. 사고하고 사고하여 닥칠 수밖에 없는 사태들을 견뎌내는 식이다. 사태의 원인도 책임도 세계와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어째서 무너지지 않는가
‘전두엽 브레이커’의 질문은 이것이다. 주인공은 일간지 신춘문예 등단을 꿈꾸는 작가 지망생이다. 그에게 “아주 오래전에 소설은 죽었다.” “독자도 없는데. 이제 빠르고 쉬운 글을 써야” 한다는 거다. 그럼에도 등단은 자격이고 면허라 목을 맨다. 순문학파 사부를 저버리고 찾은 새 사부는 월 30만원짜리 강의 영상과 무제한 피드백을 제공해주는 월수입 7천만원 이상의 장르소설계 1위 작가다. 유료결제 3억뷰를 넘긴 “글 쪼가리”의 제목은 <내가 존나 센데 너희가 어디 감히 깝침? 마왕이건 드래곤이건 내 밑으로 다 집합!>이다. 전두엽이 아릴 정도의 제목이나 수사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입금한다. 명문대학원생들조차 지하철에서 그의 글을 읽으며 “낄낄거리”고 “더는 없을 행복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사부가 막상 가르치는 ‘형상화 펀치’ ‘각인 킥’ 따위 망측한 테크닉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판타지 장르에 저항하지만, 사부가 받은 원고료 입금 내역을 보고 휘둥그레 말한다. “사부님! 얼른 진도 나가죠.”
이런 냉소적 유머로 작품이 묻는 건 ‘문학이란 무엇인가’이고, 나아가 ‘왜 무너지지 않는가’이다. “기존의 소설은 식상하다”는 작가 본인의 도발로서, 읽혀야 한다는 문학의 숙명, 읽힌다고 완성될 리 없는 문학의 도리를 캐묻는다.
사랑은 어째서 무너지지 않는가
문학이라면 한시도 놓을 수 없는 질문 ‘사랑이란 무엇인가’는 ‘그래도 되는 사이’에 담겼다. 란주는 하현과 헤어지고 외솔과 감정을 교류하는 중이다. 모두 여성이다. 하현은 좀 달랐다. 아이를 낳고 싶어했고 결혼을 원했다. 외솔도 좀 다르긴 마찬가지. 성공한 유튜버로서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출판사에 다니고 북튜버로까지 나선 란주에게 조언한다. 북리뷰를 “노브라로 하라”는 것. 란주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젖꼭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일전의 하현은 속옷을 꼬박 챙겨입으며 “사회적 타협”을 꾀한 쪽이라서 란주는 질색했다. 방향은 다르나, 하현도 외솔도 신념에 가득 차 솔직하므로 상처를 주는 이들이라 미워했고 그래서 끌렸다. 란주는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성정이 되지 못했다. 상처받기 전 비겁했고 상처받을 듯 조심했다.
소설은 유사한 두 조합이 서로 다른 결과를 노정하기까지의 내밀한 감정들을 포착한다. ‘사랑이 왜 무너지지 않는가’를 묻는 고도화한 방식이라 해볼까. 사회적, 성적 위계 따위가 배제된 진공의 상태에서 누군가 머뭇거리자 누군가 끌어당기므로 가능한 일이다.
작품집을 기획한 작가 박상우는 13일 <한겨레>에 “2022년 1월 플랫폼을 만들었는데, 최근 장르적 요소와 정통소설의 요소가 섞인 작품들이 많이 나와 문학의 판이 확실히 크게 변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며 “독자들의 힘으로 변화가 추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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