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출신 농업사학자 맥스 아일은 농업을 중심으로 한 ‘민중을 위한 그린 뉴딜’을 제안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민중을 위한 그린 뉴딜
제3세계 생태사회주의론
맥스 아일 지음, 추선영 옮김 l 두번째테제 l 2만2000원
처음에는 생소했던 ‘그린 뉴딜’이란 말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기후변화가 ‘위기’라는 사실이 갈수록 명백해지면서, 정치세력을 막론하고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2007년 토머스 프리드먼이 이 말을 쓴 뒤로 국제기관, 정부, 정치세력들은 이리저리 나름의 그린 뉴딜을 제시해왔다. 우리는 대체로 세계체제의 중심부인 북반구에서 나온 그린 뉴딜 논의에 친숙하며, 그린 뉴딜이란 말에서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내연기관 차를 전기자동차로 대체하는 등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인간 사회의 전 영역에서 탄소 배출을 줄인다. 이러한 대대적인 변화에 일자리·불평등 문제 등이 뒤따를 것이므로 국가와 민간이 협력해 ‘대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튀니지 출신 농업사회학자 맥스 아일은 <민중을 위한 그린 뉴딜>에서 오늘날 북반구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그린 뉴딜들이 “엘리트주의, 분리주의, 배제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맹비판한다. 지은이는 북반구의 그린 뉴딜들이 외면하거나 충분히 다루지 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지적하며, 지구의 절반만이 아닌 지구 전체를 위한 ‘민중을 위한 그린 뉴딜’을 제안한다.
먼저 지은이의 정치적 입장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중심부 국가는 이례적인 능력을 갖춰서가 아니라 주변부 국가에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부를 생산한다”고 보는 ‘종속이론’이 지은이의 토대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적이며, ‘근대화’란 신화를 앞세워 ‘식민화’를 감춘다. 북반구에서 노동자 계급의 성장을 일군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형태로서 “간신히 길들인 자본주의”에 불과하다. 남반구(주변부)에서 빨아낸 가치가 없었다면, 또 혁명적 비전의 투쟁이 없었다면, 북반구(중심부)의 계급 타협 같은 성과 또한 불가능했다. 이는 생태 문제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발트가 매장되어 있는 콩고에서 코발트를 채취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코발트는 리튬배터리를 만드는 핵심 재료다. 플리커
튀니지 출신 농업사회학자 맥스 아일. 미국 뉴욕 뉴스쿨 누리집 갈무리
북반구 그린 뉴딜들이 외면하거나 다루지 않는 것의 핵심은 ‘기후 부채’다. 2009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개발도상국’들의 반발로 ‘코펜하겐 협정’을 채택하는 데 실패한 이듬해, 개발도상국 중심으로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열린 국제회의는 ‘어머니 대지의 권리에 관한 세계선언’을 채택했다. “자본주의는 지구를 식민화하는 제국주의 체계”라고 천명한 이 선언은 오랜 자본주의-제국주의 지배에 대한 ‘배상’ 책임을 부각했다. “온실기체로 가득 찬 개발도상국의 대기를 복구하라”, “개발도상국에 기술을 이전하여 이 나라들이 상실한 기회비용을 보상하라”, “기후변화의 영향과 관련하여 개발도상국에 진 적응 부채를 상환하라”…. 자본주의-제국주의는 이윤을 위해 자연을 채굴하여 산업화·상품화했고, 불공평한 교환을 통해 북반구에는 이윤을, 남반구에는 고통을 남겼다. 기후 부채에 대한 배상은 “공동으로 책임지되 책임 수위를 차별화해야 한다”는 국제법적 원칙을 구현한 것으로, ‘전 세계’ 대상의 그린 뉴딜이라면 마땅히 핵심적으로 집중해야 할 과제라고 지은이는 역설한다.
그러나 북반구 그린 뉴딜들은 기후 부채 문제를 외면한다. 가장 최근의 ‘오카시오코르테스-마키 그린 뉴딜’ 제안에 이르기까지 미국 중심으로 다양한 논의들을 살펴본 지은이는 이들의 태도가 생태근대주의·생태제국주의와 다름없다 비판한다. 기술중심적 접근으로 자본주의를 ‘관리’하여 지속시키는 데 집중하며 일자리 문제, 국경 문제 등 자국 내의 위기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기자동차 전환’ 목표를 달성하려면, 제3세계에서 착취나 다름없이 생산되고 있는 코발트, 리튬, 네오디뮴 등의 생산이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 바이오연료 생산은 제3세계 지역의 토지를 식민화하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다. 육류 섭취를 중단하라는 요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대규모 집중사육시설 운영자와 사하라 지역에서 소규모 순환방목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목동을 구분하는가? “이들은 기후위기의 책임을 화석자본주의가 아니라 얼굴도 실체도 없는 ‘전 인류’의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그러고서 기후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전환 비용을 빈민이 지불하게 만들 방법을 모색한다.”
2010년 볼리비아의 코차밤바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에보 모랄레스 당시 볼리비아 대통령(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원주민 운동 단체 활동가들이 지속가능한 산림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인 레드플러스(REDD+) 의제에 반대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는 모습. 플리커
‘배상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본주의-제국주의를 청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북반구 주도 그린 뉴딜들에 많이 등장하는 정부·기업·공동체, 경제·생계, 안보·위협 등의 말들은 현실의 이해관계를 두루뭉술하게 뭉개는 한편 기존의 산업화·상품화를 새로운 산업화·상품화로 ‘전환’하고 언제든 제3세계의 주권을 가로막을 수 있게 제국으로서의 영향력을 지속하겠다는 욕구 등을 보여준다. “북반구에서 녹색 전환을 위해 제안하는 기술-자본주의 의제에는 기후 부채 상환이라는 화해의 몸짓 대신 공격용 무기가 들어 있다.”
이에 대항하여 지은이는 ‘민중을 위한 그린 뉴딜’을 제안한다. 기후 부채에 대한 배상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 이외에 사회민주주의적 프로그램과 가장 차별화되는 또 하나의 대목은 청사진의 밑그림으로 ‘농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제국주의는 이윤을 위해 ‘경자유전’ 원칙 아래 시행됐어야 할 남반구의 농업혁명을 가로막았는데, 이는 기후위기를 혁신적으로 막을 수 있는 농업과 토지의 역량을 꺾어놓았다. 급진적인 개혁을 통해 대규모 농장을 소규모로 분할하고 ‘산업적’ 농장을 퇴출시키면, 토지에 노동을 연계하는 일이 수월해지고 노동집약도가 높은 농생태학에 더 많은 보상을 해줄 수 있다. 북반구에 자리 잡은 농장들은 생산을 멈추는 대신 생산 할당을 받고, 대형 농기업은 해체하여 국영화한다. 이를 통해 먹거리는 이윤이 아니라 보편적 재화로 거듭나고, 농업은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핵심 수단이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민중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권리, 곧 주권을 확립하는 것이 이 그린 뉴딜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지은이는 ‘국민/민족’은 민중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꼭 필요한 외피라 본다. 국가와 주권을 앞세우지 못하는 민중이 과연 ‘기후 배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제3세계 민중의 눈으로 보면, 기후위기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대안이 이처럼 외길처럼 떠오르게 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