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공간을 걷다
김규원 지음 l 미세움 l 1만9800원 서울 경복궁 서쪽 지역을 ‘서촌’이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 지역을 장의동(藏義洞), 장의동(壯義洞), 창의동(彰義洞) 등으로 이르다가, 조선 후기에 주로 ‘장동’이라 불렸다. 왕실 기관들이 몰려 있던 이곳의 한집에서 태종을 비롯해 세종, 문종, 세조 등 무려 4명의 왕이 나왔고, 권력을 좌우한 여러 사대부 가문들이 이 지역에 터잡았다.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싶던 광해군은 이곳에 대규모 궁궐(인경궁)을 새로 지으려 했으나 실패했고, 그 터엔 나중에 중인과 평민이 들어와 살았다. 김규원 <한겨레> 기자가 쓴 <오래된 서촌 오래된 서울>은 서촌을 중심으로 서울의 여러 장소들을 통해 역사를 되새겨보려 한 책이다. 서촌을 택한 것은, “중층적이고, 동시대적으로도 다양”해 이야깃거리가 많고 그만큼 오늘날 반추할 내용도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이전은 고려 때 ‘남경’이었던 청와대의 역사를 톺아보게 한다. ‘둔지미’라 불렸던 곳이 일제에 의해 ‘용산’으로 둔갑된 역사, ‘진짜 용산’이었던 한강가 용머리 언덕의 역사 등과도 닿는다. 필운대의 원래 주인이 권율이 아닌 그 아버지 권철이었다는 사실, <인왕제색도> 속 집은 정선의 집으로 추정된다는 사실 등 지은이 스스로 발견해낸 성과들도 담겼다. “구체적 공간이 없는 역사는 허공에 떠 있는 연기와 같다. (…) 역사의 존재를 절감하려면 구체적 공간과 만나야 한다.” 지은이는 ‘장동’을 비롯해 일제에 의해 ‘강제개명’된 지역들의 원래 이름들도 되새겼는데, 이 역시 공간과 역사를 제대로 연결짓고 거기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이야기’를 발견하기 위한 시도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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