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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박서련의 ‘나들’이 말한다 [책&생각]

등록 2023-06-30 05:00수정 2023-06-30 09:51

2018년 한겨레문학상으로 첫 장편(<체공녀 강주룡>)을 출간한 박서련 작가가 두번째 단편소설집 <나, 나, 마들렌>을 펴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8년 한겨레문학상으로 첫 장편(<체공녀 강주룡>)을 출간한 박서련 작가가 두번째 단편소설집 <나, 나, 마들렌>을 펴냈다. <한겨레> 자료사진

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5000원

소설가 박서련의 새 단편집 표제작인 ‘나, 나, 마들렌’은 올해 46회 이상문학상 우수작이기도 하다.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 상대의 청탁 거부 운동(2020년)에 동참했던 작가들 가운데 최은미 작가와 함께 처음 이상문학상 작품집(44~46회)에 이름을 올렸다.

46회 이상문학상 본심을 맡았던 소설가 구효서는 ‘나, 나, 마들렌’의 말미에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심사평)고 썼는데 특히 “분열하는 페르소나와 관련한 소설”로는 처음이라 했다. 이 작품에서 놀라움은 반전 탓이 아니다. ‘다중적 자아’를 부정할 수 없는 당대 현실을 인식하는 기발함과 그를 포용하는 결연함 때문이다.

12주짜리 소설 창작 수업에서 만난 두 여성. 하나는 소설가 강사의 칭찬을 독차지하는 마들렌이다. ‘나’는 소설가를 흠모하며 그 둘을 지켜본다. 창작 능력도 보잘것없다. 정작 마들렌과의 갈등이 불거진 건 서로 이끌려 당연한 듯 동거한 뒤다. 소설가 강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마들렌이 재판 증언을 부탁하자 ‘나’는 거절한다.

‘나’는 양성애자인가. 사랑하는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가. 사랑하는 자인가, 질투하는 자인가. 나는 페미인가, 반페미인가. 나는 이렇게 말하는 자다. “그(소설가 강사)가 마들렌에게 저지른 짓 때문에, 한편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미워했다.”

한 인간이 ‘분열’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나는 ‘나들’로만 겨우 설명되는 지경.

표제작 전후 쓰인 다른 작품들을 함께 보면-이것이야말로 소설집의 장점일 텐데-이 세계는 더 자명하거니와 ‘자아 증식’으로 팽창 중임을 알 수 있다.

‘젤로의 변성기’를 보자. 순정만화의 10대 주인공 소년의 목소리 연기로 인기를 구가했으나 늙어버린 50대 여성 오선재. 그 앞에 나타난 성우계 아이돌 여자 이희강. 오선재는 단골 배역이던 젤로처럼 돌연 변성과 사춘기를 겪는다. 가능한 일인가. 희강에 대한 애정으로 가능하다. 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니다. 희강의 선재에 대한 순수한 애정 덕분이다. 소설 기반 영화 <노트 온 스캔들>(2006)은 늙은 여성의 시샘과 염증으로 젊은 여성의 파멸이 극대화되는데, 선재와 희강의 욕망은 고요하다. 시차를 두고 증식된 한 몸처럼 말이다.

급기야 박서련은 ‘한나와 클레어’에서 못을 박는다. 전혀 다른 두 여성의 삶을 상류(한나)와 하류(클레어)마냥 극단으로 대비하고선, 둘은 서로 다시 만나게 되고 결국 같다고. “그도 그럴 것이 한나와 클레어는 사실 옷만 바꿔 입는다면 누가 한나고 누가 클레어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서로 닮았다. 그런 경우는 뜻밖이랄 것도 없이 흔하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수술(SRS)한 트랜스젠더가 “남자인 적 한 번도 없”다며, 인공자궁으로 수정임신하는 과정을 통해 생리통과 격통을 상상하거나 경험하는 ‘김수진의 경우’는 어떤가.

결국 소설집에서 나는 ‘나들’이고 나와 너 또한 ‘나와 나’의 확장일 수 있다. 바야흐로 박서련의 작품을, 특히 주력했던 ‘여성 서사’조차 여성 서사로만 읽을 순 없겠다. 맛도 의미도 절반만 삼키고 책을 덮는단 얘기가 되고 만다. 소재부터 이처럼 다양하니 말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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