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당시의 미국 작가 리디아 데이비스(76). 사진 부커상 재단 제공
리디아 데이비스 작품집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강경이 옮김 l 봄날의책 l 2만3000원 최근 미국 책 시장에서 유명 작가의 아마존 판매 거부 운동이 시작됐다. 주인공은 2011년 필립 로스에 이어 2013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현재는 부커상)을 받은 리디아 데이비스(76). 오는 10월 현지 출간될 그의 단편소설집 〈Our Strangers〉(우리의 이방인들)는 글로벌 온라인서점인 아마존을 통해 거래되지 않는다. 지난 4월19일 외신은 리디아 데이비스가 차기 신간을 서점 등을 통해서만 판매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데이비스는 “기업이 실제만큼 우리의 삶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기업에 너무 많은 비즈니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점점 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때마침 리디아 데이비스의 작품집 <불안의 변이>가 국내 번역 출간됐다. 어느 작품이든 이야기의 시작을 당황해하다, 곧 이야기의 끝을 궁금해할 것이며, 다음엔 아무 데나 펴서 게걸스레 이야기 전체를 흡입하려 할 것이다. 전통적 소설 양식을 파괴하거나 개의치 않는 서사로 평단은 그를 ‘실험적 작가’라 치켜세운다. 데이비스는 “대체로 별다른 계획 없이, 내가 뭘 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채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편”이라 덤덤히 선을 긋는다. ‘서사’조차 수단일 뿐 ‘정동’을 완벽하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어떤 양식이든 “쓰고 싶은 대로 쓰는 작가”가 데이비스를 위한 소개일 것이다. 한때 비슷했다가 이젠 좀 더 내가 교양을 갖추게 되면서 여전히 교양 없는 그녀와 계속 친구로 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여성의 독백 ‘교양 있는’은 서사 없이 한 쪽 분량으로 중년의 결핍 내지 자기위안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나의 몇 가지 잘못된 점’은 이별로 치닫는 여인의 상실감 내지 자기위안을, ‘늙은 여자는 무엇을 입을까’에선 그런 자기위안과 연민의 허무를 놀라운 재치와 더덜없는 구성으로 활자화한다. 소설, 소설 아닌 소설, 소설일 수 없는 작문 등 기존 4권의 소설집 100여편을 한데 묶은 <불안의 변이>는 그야말로 리디아 데이비스의 전부라 하겠다. 무엇이든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당신의 어떤 이야기도 당신의 이야기로서 당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야기엔 실제 삶의 진솔한 투영이 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스완네 집 쪽으로>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의 영어 번역가로도 이미 명성을 쌓았던 데이비스의 ‘오래된 사전’이 좋은 예다. “나는 백이십 년쯤 된 오래된 사전을 갖고 있는데, 올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위해 이 사전을 사용해야 한다. (…) 내가 오래된 사전을 위해 하는 일의 전부는 아니라도 일부는 내 아들을 위해서도 할 수 있을 텐데. 예를 들어, 나는 사전을 천천히, 신중하게, 부드럽게 대한다. 사전의 나이를 고려한다. 사전의 의견을 존중한다. 사전을 쓰기 전에 멈춰 생각한다. 사전의 한계를 안다. 사전이 해낼 수 있는 것 이상을(이를테면 탁자 위에 납작하게 펼쳐져 있기) 하라고 부추기지 않는다. 상당히 많은 시간 건드리지 않고 놔둔다.” 치유의 글쓰기 시대 이만한 응원과 모범이 있을까 싶다. 그가 아마존을 거부하고, 독자와 조금 더 당당하게 만나려는 중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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