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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생애 허문 ‘박정희 18년’ 소설로 정리하고 싶었죠”

등록 2023-06-20 18:53수정 2023-06-21 02:36

[짬] 조성기 작가

조성기 작가가 1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조성기 작가가 1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15일 인터뷰를 위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조성기(72) 작가 손에는 두 장의 A4용지 복사지가 들려 있었다.

하나는 1924년생인 그의 부친(고 조인식)의 1971년 사법시험 응시표이고 다른 하나는 박정희 정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1967년에 그의 부친 앞으로 보낸 서신이다. 이 편지에는 “귀하께서 일부 불순세력의 선전선동과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본의 아닌 일시적 과오로 요시(찰)대상자로 금일에 이르렀으나 (…) 현 국가시책에 적극 참여해주셨으므로 (…) 요시(찰)대상에서 완전삭제”한다는 통지가 담겼다.

1985년 소설 <라하트 하헤렙>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1991년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조 작가의 부친은 1961년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부산 교원노조 초등지부장이었다. 쿠데타 직후 부친은 재직하던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끌려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고 교단에서도 추방당했다. 47살까지 여러 차례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도 했던 부친은 박정희가 1979년 10월26일 김재규 총탄에 스러지고 두 달 뒤 세상을 떴다.

조 작가의 신작 표지와 1967년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작가의 부친에게 보낸 편지.
조 작가의 신작 표지와 1967년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작가의 부친에게 보낸 편지.

조 작가는 최근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을 다룬 장편소설 <1980년 5월 24일>(한길사)을 냈다. “아버지 생애는 박정희 집권 18년과 그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시대를 소설로 정리하고 싶었죠.”

5·16쿠데타 때 초등 6학년이었던 작가에게도 박정희 18년은 “분노와 공포가 공존한 시간”이었다. “김형욱 편지처럼 부친이 1967년까지 사찰을 당했어요. 부친이 개인 과외나 학교에 문구 납품을 하면서 생계를 꾸렸어요. 술도 많이 드셨죠.”

1961년 8월 소년 조성기는 집 근처 영주터널(현 부산터널) 개통식에 참석한 박정희를 멀리서 바라보며 나무총으로 저격하는 시늉도 해보았단다. “그 시절 박정희를 암살하는 꿈을 꾸기도 했죠.”

<1980년…>은 김재규가 사형을 당한 80년 5월24일 하루 동안 그의 호송 동선을 좇으며 김재규와 얽힌 ‘박정희 18년’을 녹였다. 김재규의 내면 풍경에 초점을 맞추려 1인칭 시점을 취했다. 김재규가 육사 동기이자 ‘주군’인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하며 영구집권을 꾀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무리수에 실망하고 결국 총을 꺼내 드는 얼개라 소설 속 박정희는 ‘권력욕에 이성을 잃은 독재자’, 김재규는 ‘민주주의를 위해 총을 드는 대립자’라는 구도가 주조를 이룬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김재규를 ‘권력 찬탈을 시도한 배신자’로 보는 시각이 굳건하다. “10·26은 지금도 수수께끼 같은 사건입니다. 김재규가 왜 박정희를 죽였는지에 대해 모두 견해가 달라요. 그걸 극복하려고 1인칭 기법으로 사형을 앞둔 김재규가 자기 삶에 대해 성찰하면서, 박정희 암살을 의지적으로 실행한 것을 두고 내적 독백하는 형식을 취했죠.”

서울법대를 나와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을 공부한 그는 김재규의 암살 동기를 두고 ‘무의식의 의식화’란 말도 썼다. “김재규가 중정에 있을 때 민주인사를 취조하기도 했는데요. 그 체험이 무의식적으로 김재규의 (민주 회복을 바라는) 의식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어요.” 정신분석학 거장인 카를 구스타프 융 자서전인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을 독일어 원전을 보고 번역하기도 한 그는 ‘박정희 암살에 깔린 심리학’을 이렇게 풀었다. “박정희는 마치 막냇동생 대하듯 ‘재규야 재규야’ 부르며 김재규가 자신을 닮도록 욕망을 불어넣고는 차지철(10·26 당시 박정희 경호실장)이란 제3의 인물을 통해 그 욕망의 실현을 훼방했어요. 김재규는 자신이 모델로 삼았던 박정희의 그런 방해가 무척 실망스러웠을 겁니다. 살인의욕이 들 정도로요.”

‘사형수 김재규’ 내적 독백 형식으로
10·26 박정희 암살 다룬 소설 출간
“시대가 김재규 통해 박정희 제거
소설, 억압정치 성찰하는 계기 되길”

5·16 뒤 ‘교원노조원’ 부친 체포·해직
“박 18년은 분노와 공포가 공존한 시간”

그는 ‘작가의 말’에서 “김재규 개인이 박정희를 죽인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 박정희를 죽인 셈”이라고도 했다. “부마사태 등 전체적인 시대의 흐름이 김재규를 통해 박정희를 제거했다고 봐야죠. 김재규가 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모양새든 그런 결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소설에서 지금의 정치 상황과 관련해 교훈과 경고를 얻게 되길 바란다”고 썼다. “<논어>에 ‘절문근사(切問近思)’라는 말이 있어요. ‘간절히 묻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생각하라’는 뜻이죠. 박정희가 긴급조치를 9호까지 발동해 강압적으로 계속 누르다 결국 화산처럼 터져 버렸잖아요. 조금씩 용암이 흘러나오도록 해야 했는데요. 제 소설이 억압 정치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경기고 1년 때 입주과외를 하던 집에서 문학지에 실린 중·단편 천 편을 읽고 문학에 뜻을 두었던 그가 서울법대에 들어간 것은 부친의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기 몇 달 전 대학 3학년 여름에 부친 앞에 무릎을 꿇고 고시 포기 선언을 했다. “제 말에 아버지가 입고 있던 러닝셔츠를 찢고 물어뜯기까지 하더니 나가버리시더군요.” 작가는 그 무렵 신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 대략 15년을 문학 대신 종교에 열정을 바쳤다. “문학과 고시 사이 갈등으로 불면과 위장병이 생겨 죽을 지경이었죠. 그때 전도를 받고 신학대학원에도 갔죠.”

하지만 그는 다시 문학으로 돌아와 수십만권이 팔리는 소설을 쓰고 굵직한 문학상도 여럿 받았다. 그는 1999년에 개신교 십일조를 비판하는 책도 냈지만 여전히 독실한 기독교 신도이다. 매주 오랜 성경공부 모임을 이끌고 언젠가 ‘예수 평전’을 쓰리라는 “원대한 목적”도 있다. 그는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예수 정신에서 멀어져 안타깝다”고 했다. “자기를 낮추고 비우면서 어려운 사람을 많이 생각하는 게 예수의 기본 정신입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기독교는 주로 성공과 부유, 번영으로 쏠려 있어요. 채우고 확장하는 쪽으로요.”

그는 ‘공부하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한문과 일본어, 라틴어, 독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독해가 가능하다. 중국 고전소설 <삼국지연의> 번역본(2002년 완간)도 냈다. 한문은 80년대에 한국인 의식의 원천인 <삼국유사>를 파고들면서 독학했단다. 공부가 그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에 관심을 갖고 카를 용 분석심리학을 토대로 ‘삼위일체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이라는 석사 논문을 썼어요. 그러면서 종교와 문학 사이 갈등을 해소했고 이어 젊은 날의 정신적, 종교적 방황을 다룬 소설 <야훼의 밤>(1986)도 썼어요. 이 소설은 수십만권이 팔렸어요. 제가 아멘 식 소설만 썼다면 공감대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이번 작품처럼 ‘친일파’ 윤치호를 다룬 소설을 썼고 한경직과 유일한 평전도 냈다. 인터뷰를 마치며 작가로서 어떤 인물에 끌리는지 물었다. “복잡한 인물이죠. 윤치호를 쓸 때 태평양 전쟁 이후는 다루지 않았어요. 전쟁 전에는 윤치호의 내적 갈등이 심했는데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한 뒤로는 갈등이 보이지 않더군요. 윤치호는 폭격 소식에 벅찬 감동을 느끼더군요. 미국 식민지가 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죠. 백인 식민지보다는 일본에 지배받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었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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