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조성기 작가
조성기 작가가 1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조 작가의 신작 표지와 1967년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작가의 부친에게 보낸 편지.
10·26 박정희 암살 다룬 소설 출간
“시대가 김재규 통해 박정희 제거
소설, 억압정치 성찰하는 계기 되길” 5·16 뒤 ‘교원노조원’ 부친 체포·해직
“박 18년은 분노와 공포가 공존한 시간” 그는 ‘작가의 말’에서 “김재규 개인이 박정희를 죽인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 박정희를 죽인 셈”이라고도 했다. “부마사태 등 전체적인 시대의 흐름이 김재규를 통해 박정희를 제거했다고 봐야죠. 김재규가 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모양새든 그런 결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소설에서 지금의 정치 상황과 관련해 교훈과 경고를 얻게 되길 바란다”고 썼다. “<논어>에 ‘절문근사(切問近思)’라는 말이 있어요. ‘간절히 묻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생각하라’는 뜻이죠. 박정희가 긴급조치를 9호까지 발동해 강압적으로 계속 누르다 결국 화산처럼 터져 버렸잖아요. 조금씩 용암이 흘러나오도록 해야 했는데요. 제 소설이 억압 정치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경기고 1년 때 입주과외를 하던 집에서 문학지에 실린 중·단편 천 편을 읽고 문학에 뜻을 두었던 그가 서울법대에 들어간 것은 부친의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기 몇 달 전 대학 3학년 여름에 부친 앞에 무릎을 꿇고 고시 포기 선언을 했다. “제 말에 아버지가 입고 있던 러닝셔츠를 찢고 물어뜯기까지 하더니 나가버리시더군요.” 작가는 그 무렵 신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 대략 15년을 문학 대신 종교에 열정을 바쳤다. “문학과 고시 사이 갈등으로 불면과 위장병이 생겨 죽을 지경이었죠. 그때 전도를 받고 신학대학원에도 갔죠.” 하지만 그는 다시 문학으로 돌아와 수십만권이 팔리는 소설을 쓰고 굵직한 문학상도 여럿 받았다. 그는 1999년에 개신교 십일조를 비판하는 책도 냈지만 여전히 독실한 기독교 신도이다. 매주 오랜 성경공부 모임을 이끌고 언젠가 ‘예수 평전’을 쓰리라는 “원대한 목적”도 있다. 그는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예수 정신에서 멀어져 안타깝다”고 했다. “자기를 낮추고 비우면서 어려운 사람을 많이 생각하는 게 예수의 기본 정신입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기독교는 주로 성공과 부유, 번영으로 쏠려 있어요. 채우고 확장하는 쪽으로요.” 그는 ‘공부하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한문과 일본어, 라틴어, 독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독해가 가능하다. 중국 고전소설 <삼국지연의> 번역본(2002년 완간)도 냈다. 한문은 80년대에 한국인 의식의 원천인 <삼국유사>를 파고들면서 독학했단다. 공부가 그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에 관심을 갖고 카를 용 분석심리학을 토대로 ‘삼위일체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이라는 석사 논문을 썼어요. 그러면서 종교와 문학 사이 갈등을 해소했고 이어 젊은 날의 정신적, 종교적 방황을 다룬 소설 <야훼의 밤>(1986)도 썼어요. 이 소설은 수십만권이 팔렸어요. 제가 아멘 식 소설만 썼다면 공감대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이번 작품처럼 ‘친일파’ 윤치호를 다룬 소설을 썼고 한경직과 유일한 평전도 냈다. 인터뷰를 마치며 작가로서 어떤 인물에 끌리는지 물었다. “복잡한 인물이죠. 윤치호를 쓸 때 태평양 전쟁 이후는 다루지 않았어요. 전쟁 전에는 윤치호의 내적 갈등이 심했는데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한 뒤로는 갈등이 보이지 않더군요. 윤치호는 폭격 소식에 벅찬 감동을 느끼더군요. 미국 식민지가 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죠. 백인 식민지보다는 일본에 지배받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었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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