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정현선 yoihoi50@hani.co.kr 혜화1117 제공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백 년 전 ‘데파-트’ 각 층별 물품 내력과 근대의 풍경
최지혜 지음 | 혜화1117
“찬란한 일류미네이순과 쇼윈도, 엘레베이터, 에스카레이터와 마네킹과 그러고 옥상정원 이러한 것들이 주출하는 특이한 긔분 이것이 근래의 요귀(妖鬼) 데파-트멘트가 가지고 잇는 분위긔와 그것은 아메리카니즘과 에로티시즘과 그로테스크가 교류하는 근대 문명의 삼각주며 (…) 이러한 요괴한 존재가 경성시의 남부에 참연히 대두하기 시작하야 신경적인 도회인의 소비력을 고갈식히려고 한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미쓰코시 백화점과 조지야 백화점 사이에 벌어진 ‘상업전쟁’을 조명한 1930년 8월29일치 <조선일보> 기사의 한 대목이다. 오늘날 인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근대 소비 자본주의의 총화로서 ‘백화점’이란 존재는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한결같다. 다만 근대의 첫머리에 있던, 그것도 식민지란 환경에서 이 ‘근래의 요괴’를 만났던 이들의 경험은 지금과 사뭇 달랐을 터다.
미술사학자 최지혜가 쓴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는 당시 백화점 층별로 팔았을 법한 구체적인 물건들을 통해 우리를 그 시대로 데려간다. 통조림에서 과자, 핸드백, 구두, 속옷, 귀금속, 안경, 축음기, 피아노에 이르기까지 “너무 시시콜콜해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 일상의 사물과 그 유래를 통해 백여 년 전 시대의 풍경을 그려본 시도”다. ‘딜쿠샤’ 실내 복원 등 근대건축 실내 재현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한 지은이는 1920~30년대 경성의 여러 백화점에서 발행한 층별 안내도를 바탕으로 삼아 당시 신문·잡지의 광고 등에 자주 나오던 물건 130여가지와 그 내력 등을 소개한다. 말하자면 근대 온갖 물품들에 대한 ‘박물지’인데, 식품부·생활잡화부(1층), 화장품부·양품잡화부(2층), 양복부(3층), 귀금속부·완구부·주방용품부·문방구부(4층), 가구부·전기기구부·사진부·악기부(5층) 등 백화점을 직접 돌아보듯 층별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일본에서 최초로 백화점을 설립했던 미쓰코시가 1930년 세운 신관 낙성 광고. 스키우라 히스이의 그림이다. 혜화1117 제공
1930년대 30만 인구가 살았던 경성에 북촌에 화신, 남촌에 미쓰코시, 조지야, 미나카이, 히라타 등 다섯개의 백화점이 있었을 정도로 백화점은 서구 근대 문물을 만나게 해주는 창구였다. 대구에서 서적·양품을 파는 청년 사업가 이근무는 1933년 9월 경성에 올라와 백화점들을 순례했던 기록을 남겼는데, 지은이는 이를 이야기 형태로 풀어 책 전체의 길잡이로 삼았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물건값을 흥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각종 먹을거리,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 백화점은 물 건너온 박래품과 유행하는 온갖 물품, 말 그대로 ‘백화’가 넘쳐나는 스펙터클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것이다.
1939년 조지야 백화점 신축 기념으로 일본 화가 도쿠리키 도미키치로우가 그린 그림 엽서. 혜화1117 제공
맥주는 외래 상품들 가운데 해를 거듭할수록 수요가 급증한 대표 품목이다. 일본 맥주계의 양대 산맥인 대일본맥주와 기린맥주회사는 1933년 각각 조선맥주와 소화기린맥주를 우리 땅에 설립했는데, 바로 하이트 진로와 오비맥주의 전신이다. “맥주 소비 시장이 커지면서 이를 통해 거두는 세금이 늘어난데다 만주 일대로 수출하기도 쉬운 품목이라 식민지에 맥주 공장을 설립하는 일은 일제의 전략 산업 중 하나였다.” “조선 산품”인 “삿포로, 아사히를 애용”하라는 광고 문구가 “서글픈 그때의 사정”을 말해준다. “1병의 자양량이 우육 반 근과 갓다”며 맥주를 광고했을 정도로 당시 먹고 마시는 물품들은 자양·영양의 가치를 앞세웠고,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레디메이드’ 약인 인단, 팔보단 등 각종 매약(賣藥)은 “민중의 복음”이었다.
어떤 물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적 수단이었다. 채만식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1934)의 주인공은 돈 없는 룸펜인데, 싸구려 담배의 대명사인 ‘마코’를 주려는 담배 가게 주인에게 공연한 객기를 부려 “당치도 아니한” ‘해태’를 산다. 둘의 가격 차이는 곱절인데도. 고급 담배 ‘은하’는 출시 전 담뱃갑 디자인을 현상 모집했는데, 입상작 등의 도안을 미쓰코시 백화점 갤러리에 전시하기도 했다.
개화와 함께 바뀐 의식주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건 옷이었을 텐데, 1920년대 들어 양복은 그야말로 대세가 되었다. ‘조지야 양복점’은 1904년 경성에서 문을 열었는데, 옷을 많이 팔아 1929년 조지야 백화점이 됐다. 신사복을 가리키는 말인 ‘세비로’는, 부모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당시 소비문화의 화려함과 사치를 대변”하는 ‘세비로 청년’이란 말도 낳았다. 소비자로서 어린이의 존재도 부각됐다. ‘란도셀’은 군대에서 비롯한 사각 모양 가죽 가방인데, “초등학교 시절 이어령에게 근대화, 서구화란 곧 무명천으로 만든 책보를 버리고 가죽 냄새 풍기는 란도셀을 메는 것”이었다.
1927년 의창상회의 가을 모자 홍보 안내서 표지. 국립민속박물관. 혜화1117 제공
1933년형 모던 수영복의 완비를 알리고 있는 화신 백화점 카탈로그. 혜화1117 제공
거의 유일한 남성 화장품인 포마드 광고에 ‘명랑’이란 말이 많이 쓰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 “명랑함은 자본주의가 모던뽀이에게 부여하는 소시민적 감정”이었다는 지은이의 분석이 흥미롭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는 더러운 경성의 거리를 비롯하여 주택·보건위생·치안·교통 등을 명랑하게 만들고, 신문·잡지·음반·영화 등을 검열하는 등 군국주의 정책에 부합하는 시민과 사회를 만드는 ‘대경성 명랑화 프로젝트’를 단행했다.”
치약·칫솔 같은 일상품부터 귀금속·축음기 같은 사치품까지, 마치 근대의 삶 자체를 구성해온 듯한 100여가지 물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읽은 뒤엔, ‘모던 경성’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화려하고 풍족했을 거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은이가 책의 맨 앞에 인용한 시인·문학평론가 김기림의 수필 ‘공분’의 한 대목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는 현대인의 신경증에 대해 “갖고 싶은 것이 무수하게 번식하고 또 그 자극이 쉴 새 없이 연달아 오니까 거기 따라서 사람들의 욕망의 창고에는 빈구석만 늘어갈밖에 없다”며, “그 빈구석을 메꾸고 타오르는 것은 울화의 불길”이라 썼다. ‘욕망의 창고’와 ‘울화의 불길’ 사이의 ‘시소게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저 ‘근래의 요귀’ 역시 여전히 우리를 매혹하면서 잡아먹고 있는 중이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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