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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우울증의 탄생
기타나카 준코 지음, 제소희·이주현·문우종 옮김, 이현정 감수 l 사월의책 l 2만5000원 2000년 일본 대법원은 광고회사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해 “만성적이며 과도한 업무로 인해 발생한 우울증의 결과”라 판결했다. 우울증을 대하는 일본 사회의 태도가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정신병은 오랫동안 ‘비정상’이라 낙인 찍고 기피하는 대상이었는데, 이젠 모든 정신병(우울증)에는 ‘사회적’ 원인이 있으며 누구나 그것에 걸릴 수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원저 2011년 출간)에서 일본의 의료인류학자 기타나카 준코는 일본 사회에서 우울증이 ‘의료화’된 독특한 과정을 인류학적·사회학적으로 파고든다. 19세기 독일 정신의학 개념을 수입했기에 일본 근대 정신의학은 기본적으로 유전적으로 취약한 이들에게 우울증이 발병한다는 식의, ‘생물학적인 것’을 토대로 삼았다. 그러나 치료가 아닌 감금으로 귀결하는 이런 정신의학에 반발하여 60년대 말에는 ‘반정신의학 운동’이 일었다. 지은이는 반정신의학 운동이 “우울증의 향후 ‘의료화’를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생물학적인 것’ 대신 ‘사회적인 것’에 집중함으로써, 일본의 정신의학자들은 경제적 불황, 우울증, 자살을 연결해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지배적인 상실감과 불안감을 우울증이라는 이름하에 구체화하고 집단적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신체들에 대한 문화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법·제도 등 사회 전반이 함께 ‘의료화’됐다. ‘사회적인 것’은 이처럼 새로운 길을 열었지만, 항우울제의 급속한 확산이나 정신의학적 감시망의 진화 등 사회 전반의 ‘의료화’에 따르는 난점들도 직시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냉철하게 지적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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