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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에스포지토 “공동체 살리는 ‘면역’은 약이자 독” [책&생각]

등록 2023-06-02 05:01수정 2023-06-02 10:24

이탈리아 정치철학자의 최근작
‘면역’의 사회‧정치적 의미 탐구

공동체와 면역화의 모순 관계 주목
둘 사이에서 균형 찾는 것이 정치

사회 면역

팬데믹 시대의 생명정치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지음, 윤병언 옮김 l 크리티카 l 2만6000원

로베르토 에스포지토(73)는 안토니오 네그리, 조르조 아감벤의 뒤를 이어 현대 이탈리아 정치철학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학자다. 에스포지토에게 명성을 안겨준 것은 <코무니타스>(1998), <임무니타스>(2002), <비오스>(2004)로 이어지는 ‘생명정치 삼부작’인데, 이 책들 가운데 특히 ‘면역’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파고든 <임무니타스>는 코로나바이러스 창궐과 함께 새삼스럽게 주목받았다. 2022년에 출간한 <사회 면역: 팬데믹 시대의 생명정치>는 에스포지토가 <임무니타스>에서 정립한 ‘철학적 면역학’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응답해 집필한 책이다.

이 책의 논의를 수월하게 이해하려면 에스포지토가 구축한 ‘코무니타스’(communitas)와 ‘임무니타스’(immunitas)라는 개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라틴어에서 가져온 두 낱말은 서로 대립하면서 보완하는 일종의 쌍개념이다. 먼저 코무니타스를 보면, 이 낱말은 통상 공동체로 번역되는데 에스포지토는 이 말의 뿌리를 살펴 아주 다른 의미를 끄집어낸다. 코무니타스는 ‘함께‧공동’을 뜻하는 접두사 ‘콤’(com)과 ‘무누스’(munus)가 합성된 말이다. 무누스는 ‘의무‧책임’을 뜻함과 동시에 ‘선사‧선물’을 뜻한다. 무언가를 선사할 의무가 무누스다. 그러므로 코무니타스는 ‘선사의 의무를 공동으로 진 사람들의 집합’으로 새길 수 있다. 공동체란 공통의 정체성을 소유한 집단을 뜻하기에 앞서, 타자에게 내 것을 선물로 내주어야 하는 의무를 함께 이행하는 집단을 뜻한다. 이런 의미의 공동체는 ‘타자에게 열려 있음’ 곧 개방성을 본질로 한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러면 임무니타스는 무얼 뜻하는가? 이 라틴어 단어도 ‘무누스’에 부정 접두사 ‘임’(im)이 합쳐진 말이다. 그러므로 ‘선사의 의무(무누스)가 없음’이 임무니타스의 본디 의미다. 임무니타스는 어떤 공동의 의무에서 면제돼 있는 상태, 일종의 면책특권을 가리킨다. 외교사절의 면책특권이 임무니타스다. 이 말이 뒤에 ‘공동체가 겪는 역병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 곧 면역이라는 의미로 확장됐다. 이런 의미의 임무니타스가 19세기 이후 면역학의 발달로 일상적 의미를 지배하게 됐다. 에스포지토는 이 면역학적 의미를 염두에 둠과 동시에 이 말의 뿌리로 돌아가 정치적‧사회적‧문화적‧제도적 차원의 임무니타스에 주목한다. 그런 의미의 임무니타스는 코무니타스와 뗄 수 없는 결합 관계를 이룬다. 왜 그런가?

코무니타스는 ‘개방돼 있는 집합체’여서 외부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코무니타스가 자립하려면 반드시 임무니타스라는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여기서 임무니타스는 공동체를 둘러싼 방어벽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공동체가 없다면 방어벽은 존재할 이유가 없고, 방어벽이 없다면 공동체는 존속할 수 없다. 이렇게 코무니타스와 임무니타스는 서로를 전제로 삼는다. 더 주목할 것은 그렇게 공속하는 코무니타스와 임무니타스의 내적인 모순 관계다. 임무니타스는 코무니타스가 존속하려면 반드시 필요하지만, 임무니타스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코무니타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외부로 난 통로가 폐쇄되면 공동체가 일종의 감옥이 돼 사람이 살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백신의 과다 투입이 목숨을 앗아가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그러므로 임무니타스가 제 기능을 하려면 한계를 넘지 않아야 한다.

에스포지토는 코무니타스와 임무니타스의 모순적 관계를 통해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설명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인민 주권’을 핵심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 평등성이라는 원칙이 절대화하면 민주주의 자체가 죽어버리는 역설이 벌어진다. 인민의 일반의지가 무차별로 적용될 때 인민독재라는 전제정치가 나타나 개인들의 차이를 휩쓸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위험을 제어하려면 인민의 일반의지가 그대로 관철되는 것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선거제-대표제’라고 에스포지토는 말한다. 선거로 대리인을 뽑아 의회로 내보내는 대표제가 인민독재를 막는 길이다. 대표제는 ‘뛰어난 자들의 정치’라는 의미에서 일종의 귀족정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귀족정치가 과도해지면 소수 엘리트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과두정치로 떨어진다. 대표제라는 장치가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면역 구실을 하지만, 그것이 과잉이 되면 민주주의를 죽이는 독극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면역이 없을 때도 민주주의는 파괴되지만 과도한 면역도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에스포지토는 면역을 ‘파르마콘’(pharmakon)에 비유한다. 그리스어 파르마콘은 약과 독을 동시에 뜻한다. 임계치를 초과해 투입하면 약은 독이 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코무니타스와 임무니타스 사이의 균형이다.

에스포지토는 이 둘의 관계를 인류 문명 전체로 확장해 일반화한다. <문명 속의 불만>에서 프로이트는 인간 삶의 근원적 모순을 문명화 과정을 통해 설명했다. 문명화란 인간에게 내장돼 있는 공격 성향을 문화적 훈육을 통해 제어하는 것을 뜻한다. 폭력 본능에 백신을 주입하는 것이 문명화다. 그러나 문명화를 거친다고 해서 본능적 충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격적 충동의 방향이 바뀔 뿐이다. 타자로 향하던 공격성이 방향을 바꿔 자기 자신을 치받게 되는 것이다. 이때 형성되는 것이 내면의 초자아다. 초자아의 감시와 질타 속에 죄의식이 자라난다. 문명화를 통해 공동체의 평화를 이루는 과정은 인간 내부에 죄의식이라는 신경증을 창출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명화 곧 면역화는 공동체의 안전을 불러오지만 그 대가로 개인의 신경증을 낳는다. 이 관계는 풀리지 않는 모순 관계다. 여기에 삶의 비극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모순 속에서 양쪽의 낭떠러지 사이로 난 좁을 길을 거쳐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일이다.

에스포지토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라는 사태로 돌아온다. 팬데믹 국면에서 자유를 지킬 것이냐 생명을 살릴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 논쟁을 깨끗이 해결할 방법은 없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지만 자유의 가치를 포기할 수도 없다.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길을 찾는 것, 이것이 정치가 할 일이며 그 일을 할 때 정치는 ‘생명을 살리는 정치’가 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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