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감정과 심신미약에 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교양
차승민 지음 | 아몬드 | 1만6800원 흉악한 범죄 사실이 적힌 판결문이나 이 판결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심신 미약’, ‘심신 상실’ 등의 단어를 접할 때가 있다. 판사가 이 네 글자를 적기 위해서는 그보다 앞서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 의료진의 판단이 있어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한 달 동안 “공감을 접어두고 중립적 자세로” 피의자 신문조서 내용을 살피며 그가 범행 발생 당시 어떤 상태였는지를 판단한다. 치료감호소 의사들은 고독하고 외롭게 인간과 범죄를 이해하는 일을 한다. 저자는 치료감호소에서 5년여 일하면서 230건 넘는 정신감정을 진행했다. 조현병, 음주 후 범죄, 치매, 자폐증, 우울증과 조울증, 성범죄자와 사이코패스 등 다양한 범죄자를 대면 치료한 사례를 책에서 소개한다. 이니셜로만 기록된 익명의 범죄자들의 상태를 어떻게 판단했는지, 판단 근거들을 확인할 수 있다. 2년 전 쓴 책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을 통해 치료감호소 내부 이야기를 쓴 적 있는 저자는 정신감정을 “면죄부가 되지 않으며 치료의 기회를 얻는 시작점이어야 한다”고 의미부여한다. 저자가 말하는 정신감정은 ‘치료와 재범 방지’ 목적이 있다. 피의자에 대해 ‘심신 건재’라고 판단할 경우 피의자가 법에 의한 정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들지만, 의사로서 혹시 그에게 제대로 된 치료가 이어지지 않을 경우는 없을지 우려한다. 동시에 심신 상실, 심신 미약 판정 자체가 범죄에 대한 무죄를 의미하거나 감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의사의 책임감을 잊지 않고 또 사회를 향해 법의 언어로 정신감정을 하는 전문가로서 사회에서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를 차근히 풀어간다. 처벌과 치료 사이 저자가 지키고 싶은 것은 모두의 인권이다. 심신 상실과 심심 미약, 심신 건재로만 구분할 수 있는 틀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중립적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성충동약물치료가 피의자에 대한 이중 처벌 논란은 있지만 효과적인 재범치료 방법이라고 옹호한다. 자발적으로 술을 많이 먹고 저지른 죄는 심신 건재로 엄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치료감호가 도움이 안 되는데, 시민들의 감정에 따라 가족들과 분리되는 치료감호형을 받은 어떤 피의자에게는 이 처벌이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치료감호소 전문의의 기쁨과 슬픔을 엿보며 독자는 범죄를 둘러싼 다양한 인권 문제를 재발견할 수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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