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찰스 로빈슨 그림, 김옥수 옮김ㅣ 비룡소 (2011)
이른 봄에 영국에 왔다. 요크에서 비바람을 맞고 다니다 덜컥 감기에 걸렸다. 영국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해가 떴다가도 금방 우박이 내린다. 골골거리며 기침을 하다 영국인은 어떻게 견디나 싶었다. 기차를 타고 가다 <비밀의 화원>을 읽으며 비밀을 알았다.
인도에 살던 메리 레녹스는 콜레라로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는다. 고모부와 살기 위해 요크셔로 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셀스웨이트 정원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메리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 여기가 바다는 아니지요. (…) 지금도 바다 같은 소리가 나요.” 메드록 부인은 “들판도 아니고 산도 아니에요, 여긴 황무지예요. 히스꽃과 금잔화 말고는 아무것도 안 자라고 야생 당나귀와 양 말고는 사는 게 없는 황량한 땅이 수십 킬로미터나 펼쳐져 있죠.”
흔히 황무지라고 번역되는 이곳은 무어(moor)다. 거친 들판 무어에 부는 차가운 바람을 맞고 허약한 나는 속수무책으로 감기에 걸린 것이다. 인도에서 온 메리도 처음에는 나와 비슷했다. 부모 모두 바빠서 인도인 유모 손에서 자란 메리는 성질이 까탈스럽고 빼빼 마른 데다 잔병치레도 많았다. 외롭게 자라 사랑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는 메리는 억세고 건강한 요크셔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달라진다. 밥맛이 없다고 깨작대는 메리에게 요크셔 하녀 마사는 “따뜻허게 챙겨 입고 얼릉 나가서 놀도록 허세요. 그러면 몸에도 좋을 거고 배가 고파서 괴기 생각도 절로 날 팅게”라고 잘라 말한다. 인도처럼 유모가 놀아주는 것도 아니니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간 메리는 ‘가슴이 붉은 울새’와 벤 노인을 만나고 비밀의 정원 이야기도 듣는다. 붉은 가슴 울새의 도움으로 10년 전 닫힌 비밀의 정원의 문을 여는 열쇠도 찾아냈다. 메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무려 다섯 명이나 생겼고, 아픈 사촌 콜린까지 돕는다.
동화에서 메리와 콜린은 외로움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다. 반면 가난한 요크셔의 아이 디콘은 생명력이 충만하다. 디콘이 지닌 건강함의 비밀은 황무지에 있다. <비밀의 화원>의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황무지일지 모르겠다. 겨울과 이른 봄, 황무지는 춥고 바람은 거칠다. 하지만 메리가 “밖에서 놀 때 황무지 너머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요”라고 말할 만큼 황무지의 거친 생명력은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운다.
수선화 같은 구근식물은 추운 겨울을 나야만 봄에 꽃이 핀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여기 요크 황무지에 가득 핀 수선화를 보고서야 그 이유를 몸으로 깨달았다. 황무지에서는 꽃도, 아이들도, 울새도, 산토끼도 모두 제힘으로 자란다. 메리도, 콜린도 모두 무어를 만나 건강해졌고 생의 충만감을 맛보았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언제나 거친 바람을 맞고 뛰어노는 것이다. 그래야 살이 오르고 생명이 넘친다. 초등 4년부터.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