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작가가 데뷔 38년 만에 처음으로 연작소설 <작별 곁에서>를 출간했다. 사진 ⓒ신나라, 창비 제공
신경숙 지음 l 창비 l 1만5000원 신경숙(60) 작가의 첫 연작소설 <작별 곁에서>는 세 통의 긴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여전히 선연한바 작별을 알리는 <풍금이 있던 자리>(1992)와 같은 서간체의 미학으로 신경숙은 다시 신경숙이 되고자 하는 듯하다. 30년 전 작별이 뜨겁게 서늘했다면, 이제 작별은 따뜻한 그늘 아래 있다. ‘봉인된 시간’. 1979년 주미 외교관으로 3년 머물 예정이던 남편과 그의 아내, 자식이 시국 사건에 휘말려 6개월 만에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다. 시를 쓰던 아내는 갓 마흔에 조국과 모국어를 잃고, 억척스레 새 터전을 일굴 즈음 남편을 잃는다. 다시 시로 잃은 것을 견디듯, 살던 뉴욕 맨해튼을 고립시키고 전기도 끊어버린 태풍을 견뎌가며 며칠에 걸쳐 써나가는 긴 편지는 비로소 죽음과 작별하고 새 작별을 예비하는 여정이 된다. 이 이메일의 수신자가 ‘작별 곁에서’의 화자다. 뉴욕에 머물던 1년, ‘봉인된 시간’에 살던 이에게 고국의 온기를 전해주며 깊이 교감했던 화가. 뉴욕의 ‘나’는 애타게 안부를 묻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서울의 ‘나’는 8년 만에야 답장을 쓴다. 8년 전 잃은 딸, 그리고 최근 목도하는 코로나의 죽음들 곁에서. 다만 8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에서 새삼 4·3의 흔적을 보며 “여기 없는 존재들을 사랑하고 기억하다가 곧 저도 광활한 우주 저편으로 사라지”리라는 생각으로. 그리고서 뉴욕의 ‘나’에게 띄우길, “어디로도 가지 마시고 저를 잊지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셔요, 조금만요.” 마치 작가와 독자의 귀한 인연에 대한 안부 인사로도 들리는 이 말. 신경숙은 후기에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일들로 삶의 방향이 틀어져버린 사람들의 작별이 희미하게 서로 연결된 채 여기 있다”고 썼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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