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내일은 또 다른 날> 속 한 컷. 딸기책방 제공
김금숙 지음 l 딸기책방 l 2만원 한국 그래픽노블의 전도사라 해도 무방할 작가 김금숙의 신작 <내일은 또 다른 날>은 그의 관심사와 주제가 얼마나 광활하고, 동시에 진취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국제적 지명도를 높인 작품은 한국 근현대사의 트라우마를 포착한 것들이다. 실향민 어머니와 도시를 좋아하는 딸을 인물로 내세운 <기다림>,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풀>, 제주 4·3항쟁을 다룬 <지슬> 등이 거머쥔 상 또는 수상 후보 타이틀은 부지기수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마지막 이산가족의 마지막 세대”(<한겨레> 기고)라고 스스로 곱씹되, 중요한 건 그의 작품이 과거사에 결코 머물지 않는단 사실이고 더 중요한 건 어떤 이야기이든 가장 개별적 한반도를 가장 보편적인 시각 서사로 국내외 독자에게 호소해낸다는 점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미술 유학했고, 그곳에서 낸 첫 책 또한 그렇다.) 이번 작품의 주제는 ‘한국형 난임’이다. 저출생 위기 국가로 주목받는 한국에서 난임 부부라는 ‘조명 밖’ 사람들이 감내하는 지극히 중층적인 고통. 그 많은 비혼과 노키즈는 온데간데없고, 어딜 가든 ‘순풍’ 아이를 낳는 친척, 친구, 회사 동료 부부만 보이게 마련이다. 와중에 난임 부부가 겪는 스트레스는 물론 콤플렉스조차 사회적으로 ‘배양’된 것이기 일쑤다. 여전히 강고한 가족 이데올로기 앞에서, “내가 뭘 잘못했을까” 탓하게 되는 ‘죄인’. 삼십 대 바다는 연하의 남편 산과 아이를 갖고자 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대학동기와 술자리 뒤 하룻밤 관계로 임신하게 돼 중절 수술하려는 친구 정아에게 무심코 “야, 그 아기 낳아서 나 주라” 말해 “미친년” 소리를 듣는 바다는 시부모에게 시달리는 동안엔 다른 친구 수미의 임신기념 셀카를 받아보아야 한다. 산은 인색한 아버지로부터 유년시절에도 인정을 받은 적이 없다. 제 아이를 계획해보지 않았던 이유이지만 동시에 아이는 부모, 친구에게 인정을 받는 필요조건이다. 둘은 난임검사를 하고 한 번에 6개월씩 걸리는 시험관 시술에 들어가고, 네 차례 시도 끝에 포기한다. 잇따른 실패는 자신의 삶 자체를 수묵처럼 회의로 번지게 하는, 지독히도 도리 없는 시절을 강요한다. 김금숙은 거친 굵은 필선과 음영에 그때마다의 주인공을 가둔다. 툭툭 떨어지는 목련처럼 절망했다가, 투-욱 피어나는 벚꽃처럼 자연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서른다섯살 바다의 반전 같은 여름은 지나치게 짧다. 바다와 산은 이상기후로 인한 불임의 현 세계를 비유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의 책임일 수 없듯, 바다와 산이 자책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주변의 세계는 천연색을 얻는다. 에필로그만 청푸른 이유다. 김금숙 작가는 27일 <한겨레>에 “모두는 아니지만 개인적 경험이 맞물려 2011년 기획했으나 고통스러워 바로 다루기 어려웠다. 10년이 훨씬 지나서야 몸, 치유, 생명, 삶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2030 독자들과도 해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금숙 그래픽노블 작가.
<내일은 또 다른 날> 속 한 컷. 딸기책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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