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어라 혼 지음, 서제인 옮김 l 엘리 l 1만8500원 미국의 소설가이자 히브리 문학 전문가인 데어라 혼이 쓴 이 책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하는 일이 오히려 산 유대인에 대한 사랑을 가로막는 역설에 주목한다. 죽은 유대인의 상징과도 같은 안네 프랑크에 대한 열광이, 정작 아우슈비츠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던 잘만 그라도프스키의 기록 작품을 감추는 작용이 대표적이다. 흥행에 성공한 블록버스터급 전시 <아우슈비츠>의 스펙터클한 효과가 일상의 반유대주의 혐오 및 편견을 사소한 것으로 축소시켜 버리는 역효과도 지은이의 비판을 벗어나지 못한다. 전체 12장으로 된 이 책의 제8장은 2차대전 말기 프랑스에서 저명한 유대계 예술가들을 구출해 미국으로 보냈던 ‘선한 비유대인’ 조력자 배리언 프라이의 활동을 조명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드라마 <대서양을 건너는 사람들>이 프라이와 메리 제인 골드, 알베르토 오토 히르슈만 등을 중심으로 한 이 구조 활동을 다루고 있다.) 프라이와 그의 동료들은 한나 아렌트, 마르셀 뒤샹, 마르크 샤갈, 막스 에른스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앙드레 브르통 같은 유명인들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발터 베냐민 역시 그들의 보호 아래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죽음을 맞았다. 프라이가 유명한 예술가들에 집중하느라 보통의 더 많은 유대인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매우 섬세하지만 다소 과하다는 느낌을 준다.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유대인 희생 담론의 이면을 파헤치는 시각은 신선하고 날카롭다. 그렇지만 ‘산업’이라 할 만한 것조차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현재진행형 고통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