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성난 사람들>(Beef)이란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았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두 운전자가 서로 난폭 운전을 하는 ‘로드 레이지’ 사건을 배경으로 삼은 블랙 코미디입니다.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 여기는 두 남녀가 ‘로드 레이지’로 얽히고, 복수를 주고받으며 상황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습니다. 남성은 일감도 제대로 구하기 어려운 건설 도급업자, 여성은 화초 장사로 제법 성공한 사업가로 둘의 사회경제적 처지는 극과 극입니다만, 내면에 어두운 분노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 모두 동양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입니다. 영화 <미나리>로 유명한 배우 스티븐 연이 연기한 남성은 한국계, 코미디언·배우·작가인 앨리 웡이 연기한 여성은 중국·베트남계 미국인으로 나옵니다. 그 성격과 형태는 다르지만 두 사람이 품고 있는 어두운 분노와 자기 혐오가 ‘가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런 배경에서 이해됩니다. 남성의 경우 미국 정착에 실패한 부모를 다시 미국으로 모셔와야 한다는 책임감에, 여성의 경우 경제적으론 성공했지만 정서적으로는 실패한 결혼생활을 재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있습니다.
다만 <성난 사람들>은 여태껏 미국 대중문화에서 소수자를 재현해온 전형성에 기대고 있지 않습니다. 누구도 부여하지 않은 책임감 아래에 본모습을 감춰온 두 사람이 ‘찌질하다’ 싶을 정도로 통제할 수 없는 분노를 맘껏 쏟아내며 망가져 가는 모습에는 ‘동양계’라는 납작한 규정을 뛰어넘는, 어떤 보편성이 있습니다.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인간의 입체적인 형상, 미국 사회에서 이 작품이 열렬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비결은 아마도 이것이겠죠.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 포스터.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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