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지음 l 민음사 l 1만2000원 팔순을 넘겨 시집을 출간한 여성 시인을 세는 데 한 손이 다 들지 않는다. 지난 7일 출간된 신달자 시인의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은 자신의 나이 여든, 등단 59년을 새긴다. 그보다 더 차별적인 것은 비슷한 시 생애주기에서 지배적으로 보이는 초탈과 무념, 영성과 탐미의 말로적 관념에 시인은 그닥 닿지 않으려는 ‘몸짓’이다. 그 몸짓은 다분히 ‘헐은 몸’의 행색이고 행태인데, 시인이 먼저 당도한 세계에서 전하려는 건 바로 그 몸짓의 ‘생동성’이다. 몸도 마음도 쑤시고 결리고 아프지만 초연하리라 당연시하는 세태에 대한 시적 저항. “잠들기 전/ 브래지어를 풀다가 흠칫 놀란다/ 브래지어에도 이빨이 있는가/ 서리 묻은 브래지어에서 어석어석/ 얼음 깨무는 소리 들린다// 낮에 그가 동짓달 고드름 같은 말로/ 내 가슴을 지나가더니/…// 오뉴월 서리가 내 가슴에 꽝꽝 다졌다/ 무겁게 그 하루를 보내고/ 잠들기 전/ 브래지어를 푸는데/ 말의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내 가슴이 히말라야 산등성이처럼 얼음 절벽이네//….”(‘브래지어를 푸는 밤’ 부분) 이 생경한 고통에의 진술은 ‘늙음’에 물들어 온전히 자복할 때 가능한 듯 보인다. “웃은 것을 기억 못해서 다시 웃는다”(‘기억이 날 못 본 체하면’)는, “살집만 서럽게 홀로 진흙으로 늙어 가는 여자 같은”(‘뻘1’) 처지에 머물지 않고 허름히 찾아오는 가령 “수심이랄까 근심이랄까 상심이랄까/ 아픔과 시련과 고통과 신음과 통증들은/ 모두 나의 양 떼들이라// 나는 이 양들을 몰고 먹이를 주는 목동”이 되고자 한다, “오늘을 사랑하기 위하여 양 떼들을 달래기 위하여”(‘나의 양 떼들’ 부분) 고통이 가장 명징한 삶의 증거다. 이 시집에 “죽음”이 없는 건 아니다. 넋두리가 없지도 않다. “멍텅구리”라는 잦은 시어로 자책하듯 눙칠 수밖에 없는 건 어느 젊은 시절엔 아니 그랬나 싶기 때문일 거다. 여든의 몸이 겪어내는 신산의 기록과 생의 감각을 여든 시인이 고유하게 증언하는 방식.
올해 여든에 이른 신달자 시인.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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