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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과학을 좋아하게 되는 지름길

등록 2023-04-07 05:01수정 2023-04-12 23:39

화성의 사자

제니퍼 홀름 지음, 김경미 옮김 l 다산기획(2021)

수학과 과학을 못 하는 아이였다. 화학 교과서에 쓰인 글이 암호문 같아 울었던 적도 있다. 과학서점 갈다에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날 “어린이가 과학으로 접근하는 통로는 공룡과 별”이라는 말을 듣고 격하게 공감했다. 무언가를 좋아해서 잘하게 되는 데는 작은 계기가 필요한 법이다.

결핍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혹은 어린이를 과학으로 이끌어 줄 거라는 기대 때문인지 ‘과학을 품은 동화’를 좋아한다. 굳이 ‘과학을 품다’라는 낯선 표현을 사용한 건 ‘과학 동화’라는 용어와 구별하고 싶어서다. 수학이나 과학 등 지식을 어린이 독자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어 택한 방법이 있다. 웃음, 캐릭터, 과장된 설정에 지식을 결합하는 것인데 그럴수록 이야기는 더 유치하고 지루해진다. 지식이 이야기를 방해한 결과다. 반대로 ‘과학을 품은 동화’란 그냥 문학을 말한다. 이야기는 제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다만 배경이 혹은 세계관이 과학과 닿아 있다. 에스에프(SF)를 떠올리면 쉽다. 일종의 사고실험인 에스에프는 좋은 작품일수록 미래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담는다. 이런 특징 때문에 초등학생이 읽어낼 만한 작품이 많지 않다. 제니퍼 홀름의 <화성의 사자>는 인류의 숙원인 화성 탐사를 다룬 에스에프지만 초등 중학년 정도부터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인 제니퍼 홀름에게 이야기의 발원지 중 하나는 가족의 기억이다. 증조할머니에게 영향을 받아 써낸 <우리 모두 해피엔딩>도 그렇고, 과학자인 아버지의 삶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열네 번째 금붕어>와 <화성의 사자>도 마찬가지다. 다만 전자가 역사를 품었다면 후자는 과학을 품었다. 괴짜 과학자 할아버지와 손녀와 한패가 되어 모험을 벌이는 <열네 번째 금붕어>에는 유머가 가득하지만, <화성의 사자>에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에 대한 꿈과 노스탤지어가 있다. 주인공 벨과 십 대들은 갓난아이 때 화성으로 이주한 까닭에 지구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이 막연한 그리움에서 지구에 대한 향수가 피어난다.

때는 2091년이다. 인류는 화성 표면이 아닌 좀 더 안전한 동굴 속에 나라별 거주지를 만들고 어른과 고아들로 구성된 소규모 가족 공동체를 보내 화성의 삶을 실험한다. 하지만 지구 보급품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되며 화성 기지에 위험이 닥친다. 치료제가 화성에 도착하는 데 무려 8개월이 걸린다. 주인공 벨은 ‘다른 나라의 화성 거주지 접근 불가’라는 규칙을 무시하고 도움을 청할지, 이대로 죽음을 맞아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여러 작가가 화성 이주를 꿈꾸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화성 표면에는 방사선, 먼지, 추위 등 위험 요소가 많고 대규모 이주는 현실화하기 어렵다. 제니퍼 홀름은 접근 가능한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실현 가능한 화성 이주를 작품 속에 그렸다. 화성 내 주거지나 공동체의 형태 등이 이런 결과다. 그럼에도 읽고 나면 과학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디에 살든 인류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과 세계에 대한 사랑이다. 초4부터. 한미화/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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