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마와리 하우스>의 주인공들. 나오, 혜정, 티나가 제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었다. 푸른책들 제공
히마와리 하우스
하모니 베커 지음, 전하림 옮김 l F(에프) l 2만원
한국, 중국, 일본계 세 젊은 여성이 이국에서 만나 한 지붕 아래 살게된다. 가족을 떠난 사정이 각각의 국적과 문화를 흥미롭게 은유하되, 모두가 ‘언어적 타인’이란 현재의 처지를 앞지르지 않는다. 이들 세 여성이 서로 달리 감각되는 고민을 하나의 ‘불완전한 언어’로 소통하고 위로하고 울어주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그래픽노블 <히마와리 하우스>의 줄기다.
2021년 미국서 출간된 뒤 적이 즐기고 감동을 받았다는 덴 작품의 줄기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읽는 자들의 때곳에 따라 달라지는 줄기의 그림자, 말하자면 여운 때문이겠다.
미국으로 이민 가 친구들에게 배척되지 않으려 모국어를 잊고 결국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나오는 대학 진학 전 1년을 모국 일본에서 보내고자 한다. 부모의 기대와 지원 속에 입학한 대학을 자퇴하고 도망치듯 일본으로 건너간 혜정, 개방과 솔직분방 동시에 본토적 문화·가족관계가 혼재한 싱가포르 출신 티나는 이미 1년가량 일본 어학원에 다녀왔다.
<히마와리 하우스>의 한 장면. 푸른책들 제공
이들은 해바라기를 뜻하는 히마와리 하우스에서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며 저마다의 고비를 넘긴다. 음식도 언어가 된다. 다함께 추석엔 한국음식, 설날엔 중국식, 이윽고 쓸쓸할 뿐인 옆집 독거할머니와의 나베 만찬까지.
셰어하우스에 같이 사는 일본인 청년 마사키의 무뚝뚝함이 실은 세 여자가 주로 사용하는 영어에 대한 위축 때문이었단 점은 나오가 미국에서, 세 여성이 일본에서 겪는 언어적 소외와 병치된다.
존재는 언어로 경험하고 표명되나, 불완전한 언어가 불완전한 존재를 뜻하지 않음을 작가는 응원한다. 한국어, 싱글리시(싱가포르식 영어)에도 서로 스며들며 미완적 존재의 성장을 감각하게 되는 것인데, 이 책이 영어가 전부인 줄 아는 미국서 아시아계 영어 억양과 실수 그대로 활자화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자못 각별하다.
그림은 과장되지 않고 ‘곤란’에 빠진 영어와 일어, 때로 한국어, 싱글리시가 말풍선 등에 표정을 지닌 양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히마와리 하우스>의 책 뒷면 삽화. 푸른책들 제공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의 작가 하모니 베커. 누리집을 통해 자신을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소개하고 있다. 누리집 갈무리
미국서 태어난 작가는 한국과 일본에서 거주한 적 있다. “(극중에서) 아시아 억양을 쓰는 등장인물은 죄다 코믹한 역할을 담당했”다며 “(다른) 억양은 사람들의 말에 깊이와 개성, 공간적 감각을 더해준다”고 쓴 후기는 지난달 아시아계 배우의 첫 아카데미상 수상이 지닌 의미를 일찌감치 새겨둔 것과 같다.
지난해 9월 만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심사위원장 준코 요코다 교수는 기자에게 국내 번역되기 이전의 이 작품을 추천하며 “아시아 여성들과 언어 문제를 통해 놀랍게 성장 스토리를 풀었다”고 말했다. 아시아·태평양계 아메리칸 문학상, 미국서 상금이 가장 많다는 문학상인 커커스상 등이 주어진 배경일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