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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침묵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이름 얻지 못한 ‘제주4·3’

등록 2023-03-31 05:00수정 2023-03-31 09:21

[책&생각]
제주4·3 75주년…기자이자 연구자의 종합적 서술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
허호준 지음  |  혜화1117  |  2만3000원

올레1코스에 있는 성산일출봉 앞 터진목 학살터. 사진 허호준, 혜화1117 제공
올레1코스에 있는 성산일출봉 앞 터진목 학살터. 사진 허호준, 혜화1117 제공

늘 관광객이 들끓는 정방폭포는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명승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3m 높이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물줄기가 바다와 해안 절벽, 우거진 소나무 숲 등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75년 전인 1948년 11월부터 1949년 1월 사이, 이 절경 속에서 248명이 무고하게 죽어 갔다. ‘빨갱이’를 잡는다는 ‘토벌대’가 주민들을 정방폭포 들머리에 있는 수용소로 내몰고, 어른들을 세워놓고 총으로 쏴 죽이는 ‘즉결심판’을 벌였다. 따로 갇혀 있던 아이들은 먼발치에서 그 장면을 지켜봤다. 열두살이던 김복순은 “팡팡팡팡 총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쓰러지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죽고 있다는 생각에 울기만” 했다고 기억한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팔랑팔랑 떨어지는 것이 꼭 꽃 이파리가 지는 것처럼 보입디다” 증언했다.

어디 정방폭포뿐인가. 육지와 섬을 잇는 관문인 제주국제공항, 성산일출봉으로 가는 길목인 터진목, 평온한 서남쪽 모슬포 지역의 섯알오름… ‘집단학살의 기억’은 제주 섬 전체에 서려 있다. 부모의 시신을 찾을 엄두도 못 낸 채 ‘폭도 새끼’라는 말을 들으며 남의집살이로 근근이 살아가야 했던 김복순의 삶에서 보듯, 학살은 그저 한때 일어났던 일도 아니었다. 가족과 삶을 억울하게 잃고도, 사람들은 집요한 해코지 앞에 오랫동안 침묵해야 했다. 75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지 모른다. 장소와 시간만을 앙상하게 가리켜, 그저 ‘제주4·3’이라고 부를 뿐이다.

허호준 <한겨레> 기자가 쓴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이하 <기나긴 침묵 밖으로>)는 제주4·3을 “30여년 동안 취재한 기록이자 연구의 집성”이다. 지은이는 제주 지역기자로 일하며 제주4·3을 특히 천착해왔고, 제주4·3과 그리스 내전을 비교해 국제적 의미를 짚어낸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도 했다. 지은이는 ‘제주4·3 70주년’(2018년) 때 기획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생존 희생자, 유족 들의 육성을 바탕으로 삼아, 역사적 사실과 의미까지 아울러 최대한 종합적으로 제주4·3을 다뤘다. 빼곡한 증언과 사료가 이를 뒷받침한다.

2007년 제주국제공항에서 학살 암매장된 지 60년 만에 발굴된 희생자 유해들. 사진 허호준, 혜화1117 제공
2007년 제주국제공항에서 학살 암매장된 지 60년 만에 발굴된 희생자 유해들. 사진 허호준, 혜화1117 제공

2007년 제주국제공항에서 학살 암매장된 지 60년 만에 발굴된 희생자 유해들. 사진 허호준, 혜화1117 제공
2007년 제주국제공항에서 학살 암매장된 지 60년 만에 발굴된 희생자 유해들. 사진 허호준, 혜화1117 제공

제주4·3의 역사적 사실은 이미 대강이 밝혀진 상태다. 제주도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난 시점은 1948년 4월3일이지만,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4·3특별법) 등은 1947년 3월1일 오후 제주읍 관덕정 광장에서 열린 3·1절 기념 집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숨진 사건(‘3·1사건’)을 제주4·3의 기점으로 본다. 해방 뒤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를 양분해 점령한 상황 속에서, 미군정은 제주도에서 친일·우익 세력을 중용하며 민심을 잃었고 섬에 닥친 경제난·식량난·전염병에도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3·1사건을 불렀는데도 미군정은 진상 조사를 뭉개고, 되레 제주도민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길을 열었다. 제주도 전체를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한 ‘붉은 섬’으로 규정해, 문제의 싹을 애당초 짓밟으려 했던 것이다. ‘5·10 선거’를 통한 남한 단독정부 수립, 곧 “남한에 친미 반공 정권을 수립해 소련을 봉쇄”하는 것만이 미군정의 최대 목적이었다. 외지에서 응원경찰이 들어와 수많은 제주 사람들이 검거되고 고문을 받았다. 극우단체 ‘서북청년단’이 함께 들어와 백색테러를 저지르는 등 활개를 쳤다. 폭동이 아니라 학정과 탄압이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학정과 탄압이 부른 무장봉기, 그리고 이에 대한 군경 토벌대의 잔인한 무력 진압은 제주 전체를 ‘죽음의 섬’으로 만들었다. 지은이가 전하는 수많은 생존 희생자, 유족 들의 말들이 제주 섬 전역과 주민들이 도피하거나 쫓겨 간 본토와 일본을 오가며 당시의 지옥도를 전달한다. 토벌대는 중산간 지역 마을들을 불태우고 내키는 대로 사람들을 붙잡아 가두고 죽였다. 도피한 사람이 있으면 가족 중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 했다. 북촌리에서는 단 하루 동안 무려 300여명이 집단학살됐다. 무장대 역시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아이들은 가족을 잃고 토굴에 숨어 지내다 굶어 죽었다. 살기 위해 섬을 떠난 사람들은 ‘디아스포라’가 되어 돌아오지 못했다. 제주4·3은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령’ 해제로 끝났다. 그러나 집단학살을 자행한 국가는 “반세기에 걸친 탄압과 금기의 시대”를 만들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폭도’, ‘빨갱이’ 낙인 아래 오랫동안 숨죽여 살아야 했다.

제주4·3평화공원 안의 행방불명인 표석. 사진 허호준, 혜화1117 제공
제주4·3평화공원 안의 행방불명인 표석. 사진 허호준, 혜화1117 제공

제주4·3평화기념관의 전시물 ‘백비’. “이름 짓지 못한 역사”란 설명이 달려 있다. 사진 허호준, 혜화1117 제공
제주4·3평화기념관의 전시물 ‘백비’. “이름 짓지 못한 역사”란 설명이 달려 있다. 사진 허호준, 혜화1117 제공

역사의 흐름은 커다란 물줄기와 같아서, 제주4·3의 비극은 끝내 4·3특별법 제정(2000년),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2003년)와 대통령(노무현) 사과, 국가추념일 지정(2014년) 등을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부 보고서는 4·3 희생자 수를 2만5000~3만여명으로 추정하는데, 2022년 7월까지 4·3 희생자로 결정된 인원은 1만4660명이다. 책의 끄트머리에 지은이는 ‘정명’(正名)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처럼 실체를 밝히는 일에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대한 성격이나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당장 정권의 암묵을 틈타 극우 세력이 ‘폭동’이란 말을 다시 꺼내어 들며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되돌리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지은이는 “부당한 탄압에 맞선 저항의 역사”에 부합한다는 측면에서 제주4·3에 ‘항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定名) 길을 제안한다. 물론 이것이 정답은 아니며 “지난한 논의를 거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라 덧붙인다.

또 다른 과제들도 헤아린다. 지금껏 어떤 사과도 없었던 가해자들의 책임은 어떻게 물을 것인가, 무장봉기 주도 세력이란 이유로 4·3 희생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의 책임, 그리고 사건 이후 수십여년 동안 정부의 탄압 등은 그 실체를 어떻게 밝힐 것인가….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을 중심에 두고 이 문제들을 헤쳐나갈 때, 제주4·3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역사적 유산이 될 것이란 메시지를 담았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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