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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오늘날 중국 있게 한 역사적 잠재력을 찾아

등록 2023-03-24 05:01수정 2023-03-24 09:37

클라우스 뮐한의 중국근현대사 입문서
단일한 모델·경로 아닌 ‘제도’의 복합성 집중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현대 중국의 탄생
청제국에서 시진핑까지
클라우스 뮐한 지음, 윤형진 옮김 l 너머북스 l 5만2000원

고대 세계부터 청 제국까지 중국의 장구한 역사를 하나의 시리즈로 담아낸 <하버드 중국사>(전 6권)의 책임편집을 맡은 역사학자 티머시 브룩은 이렇게 말했다. 방대한 지식과 구체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 “우리 세대는 중국의 역사를 특정한 주제에 따라 재조명하여 한 권의 책에 담아내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하지만 중국사 전체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내는 작업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서구 학계에선 존 킹 페어뱅크의 <신중국사>(1992), 조너선 스펜스의 <현대 중국을 찾아서>(1990) 같은 책들이 그런 ‘한 권의 책’으로 꼽혀왔는데, 어느덧 이 책들 역시 나온 지 30년이 넘었다.

독일 출신 중국사학자 클라우스 뮐한이 2019년 펴낸 <현대 중국의 탄생>은 페어뱅크, 스펜스를 계승해 중국 근현대사를 다루는 새로운 ‘표준 입문서’로 평가받는 책이다. 먼저 ‘현대 중국의 탄생’의 출발점을 17~18세기 ‘초기 근대’, 곧 청나라의 전성기로 잡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청나라가 흔들리고 무너지는 19세기에서 출발하는 여타 접근들과는 구분된다. 비교적 최신 저작이다 보니, 동시대인 ‘시진핑 시대’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이런 구성적 특징에는 근현대 중국 역사를 읽기 위해 지은이가 강조하는 나름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은 100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변화이며,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내재적 발전이든 서구 제국주의의 영향이든 단일하고 특정한 모델을 최상층에 놓는 관점을 거부한다. 대신 지은이는 “‘제도’를 현대 시기 중국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밝힌다. 제도는 인간들이 협력하기 위해 구축한 사회적 질서이며, 과거로부터 전달된 제도는 새로운 상황에서 “선호와 선택을 형성”한다.

지은이는 시기마다 당시 체제를 떠받쳐온 제도들이 자연환경까지 포함해 안팎에서 높아지는 압력들과 만나 어떻게 상실되고 변화하고 계승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제도를 중심에 놓으면 자연스럽게 중국이 보여준 ‘회복력’이 부각된다. 청나라 때 전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제국을 만들었던 중국은 근대가 저물어가면서 국내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새롭고 복합적인 상호작용 아래 놓이며 부침을 계속했으나, 비교적 빠른 속도로 다시금 그 지위를 회복해왔다. 똑같이 서구 제국주의의 강력한 충격을 받았으나, 다른 초기 근대의 육상 제국들과 달리 청 제국만이 국가적 통합체를 유지한 상태로 ‘혁명 시기’에 진입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뒤에는 초기에 내세운 ‘신민주주의’를 번복하고 오래된 것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개혁·개방 시기 내부의 역사적 유산들을 재활용하는 한편 세계의 변화에 긴밀하게 연결됨으로써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

하인, 고문과 함께 있는 만주 귀족, 베이징 1901~1902. 너머북스 제공
하인, 고문과 함께 있는 만주 귀족, 베이징 1901~1902. 너머북스 제공

1751년 남순에서 활기차고 부유한 도시인 쑤저우에 들어가는 건륭제. 너머북스 제공
1751년 남순에서 활기차고 부유한 도시인 쑤저우에 들어가는 건륭제. 너머북스 제공

청대 중국에서 제도적으로 독특한 것은 “중앙 국가의 능력이 번영하는 지방 사회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교적 적은 자원으로 광활하고 다원적인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중앙의 지배 엘리트들은 지방 사회에 대해 직접적인 개입은 삼가는 대신 그들을 협력적으로 통제하는 ‘최소주의’를 원칙으로 삼았다.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한 유교적 관료제는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며 황실과 엘리트의 이익을 도모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인구 성장과 농촌 생산성 감소, 서구 제국주의의 영향 등으로 과거에는 효율적이었던 제도들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고갈’됐다. 정치적 탈중앙화 및 지방화와 더불어 “정체의 중심은 황실과 유교적 관료제로부터 국가와 군대로 이동”했다. 군사력을 통제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은 경제적 자원을 얻고 정치권력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이때 새롭게 부각된 “민족주의와 군사주의”가 이후 현대 중국의 독특한 정체성이 형성되는 데 지속적이고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과거 제국에서 안정성의 핵심이었던 정치제도를 제거한 뒤 중국은 이를 대체하기 위해 이후 “세계의 정치제도 모델들이 차려진 메뉴에서 선별하여 입헌군주제, 입헌공화국, 군벌 시대 군사독재, 30년대 파시즘, 50년대 스탈린주의, 60년대 마오주의 등 국가 사회주의의 몇 가지를 차례로 선택했다.” 민족주의와 군사주의의 영향 아래 국가의 부강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국가가 경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중국식 발전 국가’의 원형은 이미 국민당 정부에서 제시됐다.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으나, 이는 국민당에 대한 군사적 승리의 결과라 대중적 지지에 대한 불안이 상존했다. 이를 강하게 의식한 공산당은 건국 초기 “기존의 구조, 제도와 협력”하는 모델을 내세웠으나, 오래지 않아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으로 오래된 것들을 파괴하는 길로 나아갔다. 이렇게 볼 때 1980년대 개혁·개방은 한때 파괴됐던 역사적 유산들을 재활용하는 것에 가까웠다. “계약 체계는 전통적인 토지 임대 방식과 비슷했고, 향진기업도 농촌 생산자들이 향촌 단위의 신용 단체를 통해 국내 농업 생산이나 무역에 공동으로 투자했던 역사적 제도를 상기시켰다.”

상하이 난징루의 시크교도 영국 경찰관과 유럽인 가족, 1900년 무렵. 너머북스 제공
상하이 난징루의 시크교도 영국 경찰관과 유럽인 가족, 1900년 무렵. 너머북스 제공

1937년 9월, 상하이를 공격하는 일본 군인들의 모습. 너머북스 제공
1937년 9월, 상하이를 공격하는 일본 군인들의 모습. 너머북스 제공

2017년 시진핑과 그의 구호인 ‘중국몽’을 선전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는 큰 광고판 앞을 걸어 지나가는 베이징 사람들. 너머북스 제공
2017년 시진핑과 그의 구호인 ‘중국몽’을 선전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는 큰 광고판 앞을 걸어 지나가는 베이징 사람들. 너머북스 제공

지은이는 “현대 중국의 부상에서 핵심적 도전은 역사적 잠재력을 드러낼 공식을 찾는 것이었다”고 짚는다. “중국의 역사적 장점은 전근대 중국 제도의 상대적 정교함, 능력주의와 교육에 대한 강조, 복잡한 행정·경제 체계를 운영했던 경험 등에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역사적 유산에 긍정적인 것들만 있을 리 없다. 지은이는 중국의 지배 엘리트들이 줄곧 “권력을 분산하고 정치적 다원성을 뒷받침할 제도를 건설하는 데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부상은 경제 발전과 정치 발전을 따로 떼어놓는 데에서 출발했지만, 여기서 비롯한 모순은 ‘시진핑 시대’의 가장 큰 짐이 되고 있다. 지은이의 통찰대로 “정치적 중심이 권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을 주저하는 것”이 늘 위기의 출발이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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