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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하늘을 모시듯 사람과 만물을 모시라” 해월의 삶과 사상 [책&생각]

등록 2023-03-10 05:00수정 2023-03-10 09:26

‘동학 괴수’로 몰려 처형되기 직전의 해월 최시형.
‘동학 괴수’로 몰려 처형되기 직전의 해월 최시형.

해월 최시형 평전
생명사상의 원류, 동학을 이끈
김삼웅 지음 l 미디어샘 l 1만9800원

한국 근현대사 인물 평전 집필에 주력하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쓴 <해월 최시형 평전>은 동학의 2대 교조 해월 최시형(1827~1898)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는 전기다.

경주의 몰락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해월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먼 친척 집에서 자라 17살에 한지를 만드는 조지소에서 일했다. 부모 없는 어린 노동자는 배움의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 해월은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1824~1864)가 1861년 경주에서 포교를 시작한 직후 수운을 찾아가 동학에 입도했다. 해월은 스승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동학의 가르침을 깊숙이 받아들였다. 죽음을 예감한 수운은 1864년 동학 괴수로 몰려 참수당하기 직전에 해월에게 동학의 도통을 전수했다. 겸허하면서도 충직하고 올곧은 해월의 사람됨을 높이 사 자신의 뜻을 이을 사람으로 선택한 것이다. 해월은 이후 35년 동안 검거를 피해 도피 생활을 하며 스승의 저작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간행하고 동학을 전국적 조직으로 키웠다. 이 책은 해월의 헌신적인 활동이 없었더라면 동학이 우리 근세사의 최대 운동으로 자라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전봉준이 앞장선 동학농민전쟁도 해월의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기에 만민평등의 반부패·반외세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동학의 가르침은 ‘하늘이 곧 사람’이라는 사상으로 요약된다. 이 책은 해월이 동학의 사상을 ‘삼경설’로 다듬어냈음을 특별히 강조한다. 삼경설은 하늘을 섬기고(경천), 사람을 섬기고(경인), 만물을 섬기라는(경물) 가르침이다. 하늘만 하늘인 것이 아니라, 사람도 하늘이고 만물도 하늘이다. 그러므로 하늘을 모시듯이 사람을 모시고 만물을 모시서야 한다. 해월이 가르친 하늘은 사람과 떨어져 초월적 존재로 있는 하늘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안에 있어 사람이 정성을 다해 길러야 하는 하늘이다. “한울(하늘)을 기를 줄 아는 자라야 한울을 모실 줄 아느니라. 한울이 내 마음속에 있음이 마치 종자의 생명이 종자 속에 있음과 같으니, 종자를 땅에 심어 그 생명을 기르는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은 도에 의하여 한울을 기르게 되는 것이니라.”

해월은 ‘경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경천만 있고 경인이 없으면 이는 농사의 이치는 알되 종자를 땅에 뿌리지 않는 행위와 같으니, 도 닦는 자는 사람을 섬기되 한울과 같이 한 후에야 처음으로 바른 도를 실행하느니라.” 이 경인 사상은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만민이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나아간다. 해월의 경물 사상은 더 급진적이다. “사람은 사람을 공경하는 것만으로는 도덕의 극치가 되지 못하고 물(만물)을 공경함에까지 이르러야 천지기화의 덕에 합일될 수 있느니라.” 천지자연의 초목과 돌멩이까지 하늘이 깃든 ‘인격체’로 보고 지극히 공경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 경물 사상은 오늘의 생명사상·생태사상을 100년 앞서 제시한 것이라고 이 책은 평가한다.

해월의 사상은 3대 교조 의암 손병희(1861~1922)로 이어진다. 눈길을 끄는 것은 1대 교조 수운에서부터 3대 교조 의암까지 모두 정치권력의 핍박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해월은 1898년 체포돼 수운과 같은 죄목으로 참수당했고, 동학의 반외세 자주 사상을 계승한 손병희는 1919년 3·1운동을 주도해 투옥된 뒤 감옥에서 풀려난 직후 죽었다. 사실상 옥사였다. 한 종교의 교조가 연거푸 3대에 걸쳐 권력과 외세의 탄압으로 목숨을 잃은 것은 세계종교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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