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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부모에게 오은영이 있다면, 10대에겐 황영미가 있다 [책&생각]

등록 2023-03-10 05:00수정 2023-03-10 16:11

모범생의 생존법
황영미 지음 l 문학동네(2021)

“제가 오은영인 줄 알고 자꾸 고민을 털어놔요.”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시작한 이후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를 쓴 황영미 작가는 중학교를 방문하는 일이 많아졌다. 저자와의 만남 행사를 하고 나면 학생들이 작가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한다. <모범생의 생존법>을 읽으며 이제 고등학생도 작가를 오은영으로 여기고 상담을 신청하겠구나 싶었다.

황영미 작가는 우리 시대 10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자화상이다. 출생의 비밀을 지녔거나 과거로부터 누가 찾아오는 식의 장르적이고 자극적인 서사는 없다. 심지어 악당도 없다. 이 작품에는 준호와 대립하는 병서가 있지만 악마는커녕 사랑받지 못한 미숙한 존재일 뿐이다. 작가는 외부의 적보다 내면의 불안과 싸우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십 대의 화법으로 들려준다.

준호는 대학 진학률이 높은 명문 두성고를 수석으로 입학했다. 성적뿐 아니라 준호는 특별히 모난 데 없는 모범생이다. 다만 지금은 아빠가 암에 걸려 엄마와 함께 귀촌하는 바람에 삼촌과 살고 있다. 아빠의 병원비 부담이 커지자 학원이나 과외 없이 혼자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 후 준호의 불안이 점점 커진다. 두성고의 경쟁이 치열한데다 성적이 자꾸 떨어진다. 이러다가 성적순으로 들어가는 정독실에서도 쫓겨날 지경이다. 이런 준호에게 ‘준 연예인’ 대접을 받는 하림이가 데이트 신청을 해온다. 초등학교 동창인 병서는 모의고사 만점을 받으며 신경을 거스른다.

구체적으로 준호의 고민은 이런 것이다. ‘이러다 정독실에서 쫓겨나면 어떡하지’, ‘차라리 아빠와 엄마가 있는 시골로 전학을 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런 걱정에서 해방될까. 불안은 평생을 간다. 어른의 불안이라고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번 프로젝트를 못 해 잘리면 어떻게 하지’,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까.’

모범생은 “마음이 시키는 일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주어진 일을 잘하는 모범생은 칭찬과 인정에 길이 든다. 긍정적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사회에 나오면 칭찬에 기대어 앞으로 가는 데 한계가 있다. 중학교 모범생 준호는 고등학교에 와서 이 벽을 만났다. 작가는 준호에게 자신과 다르게 사는 유림이를 보여준다. 대학을 포기하고 특성화고를 가려는 유림이를 보며 준호는 어렴풋이 깨닫는다. “통제권이 외부에 있는 한 나는 영원히 불안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능한 한 내 운명의 주도권은 내가 가지겠다.”

십 대로 사는 일이 고된 건 처음 시험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자기 언어를 찾아가는 길”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으며 “내적 통제감”을 갖기란 멀고도 험하다. 그래도 찾아야 한다. 귀찮다고 눈을 감는 순간 평생 불안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은영 대신 <모범생의 생존법>을 권한다. 청소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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