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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휘황한 도쿄 속 조선대학은 컴컴했으나

등록 2023-03-10 05:00수정 2023-03-10 10:33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양영희 지음, 인예니 옮김 l 마음산책 l 1만5000원

재일조선인 2세 양영희(59) 감독은 <디어 평양>(2006) <굿바이 평양>(2011) <가족의 나라>(2012)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라는 연작성 다큐 및 극영화에, 국가 체제에 포박된 기구한 가족사를 유장하게 담았다. 감독의 오빠들을 70년대 북송시킨 부모의 결정과, (결혼 전) 부모가 각기 4·3 학살을 피해 오사카로 이주한 결정은 조국과 가족이 ‘살고자’ 원초적으로 욕망되고 꿈꾸어진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조국에 대한 욕망이 배반당하고, 욕망을 신념화하고 말하자면 국유화하려는 조국을 그럼에도 또 배반할 수 없는 민중의 생애는 거대한 퇴적암에 짓눌린 채로도 꿈틀대는 단층의 표정 같다. 마침내 양영희는 그 질곡의 운명 아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생동하고 꿈틀댔을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적이 파스텔톤 글로 그렸다. 첫 장편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총련계 재일조선인이 다수였던 오사카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주인공 박미영은 연극인의 꿈을 안고 도쿄에 있는 조선대학교(조대)에 진학한다. 1983년 봄. 그가 4년을 기거할 대학 기숙사는 휘황한 도쿄 속 불 꺼진 평양과 같다. 18시 통금, 남녀 별도의 식당, 토요일 외출금지, 수업 시 흑·남색 치마저고리 착용, 청바지·염색·화장 금지, 밤 11시 생활총화(자기반성 상호비판 모임) 등등. 조대는 총련 인재 양성 학교로서 규율이 엄격하고, 문학부를 선택한 미영의 진로는 입학식 당일 이미 교사로 정해진 듯했다. “마음속 비명”을 지르는 데서만 그쳤다면 미영, 아니 양영희의 조대 졸업 뒤 실제 교사 경력(오사카조선고급학교)은 더 길어졌거나 여전했을지도 모른다.

양영희 감독은 첫 극영화 &lt;가족의 나라&gt;(2012)로 상을 받는 행사에서 일본 출판사의 편집자로부터 소설 권유를 받았다. 자유롭게 소재를 선택하라는 편집자 말에 망설임 없이 대학 시절 경험에 사랑 이야기를 섞어 쓰고 싶다고 했다고 한국어판 작가의 말에 썼다. 마음산책 제공
양영희 감독은 첫 극영화 <가족의 나라>(2012)로 상을 받는 행사에서 일본 출판사의 편집자로부터 소설 권유를 받았다. 자유롭게 소재를 선택하라는 편집자 말에 망설임 없이 대학 시절 경험에 사랑 이야기를 섞어 쓰고 싶다고 했다고 한국어판 작가의 말에 썼다. 마음산책 제공

<테아트르> 연극 전문 잡지를 들고 다니는 최초의 문학부 학생으로도 삽시간 알려지는 미영이 오직 남학생들만 다녔다는 학교 근처 라면가게에서 통금 시각을 한참 넘어 무사시노 미대 3학년 남학생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없다. 미영이 움켜쥐려던 자유 안에서, 필사적이기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운명. 그리고 2학년 여름.

도쿄 조대의 계절은 같아도 계절의 색은 미영에게 달랐다. 1985년 3학년 가을, 미영은 북한을 단체 방문한다. 공항을 나온 주석(김일성)을 보고 울지 않았다는 총화 비판을 듣지만 그는 다짐한다. “자유를 위한 고난이라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겠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졸업식은 사실상 체제로부터의 졸업식이 된다.

봄이 와도 꿈이 없다면 자유가 없다면 사랑이 없다면 그립지 않다면 봄일 수 있겠는가. 미영의 첫 학기 봄은 그가 여생 삼킬 울음을 예고하지만, 작품 내내 웃는 미영과 그 시절도 그리워하는 양영희가 얼마나 자주 보이는지 모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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