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 ‘법시장화’ 파고든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가해자 전담서비스 성황 등 개인에게 내맡겨진 성폭력
사법 시스템, “분석·개입할 수 있도록 전환 필요”
가해자 전담서비스 성황 등 개인에게 내맡겨진 성폭력
사법 시스템, “분석·개입할 수 있도록 전환 필요”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클립아트코리아
성범죄 가해자는 어떻게 감형을 구매하는가
김보화 지음 l 휴머니스트 l 2만1000원 포털 사이트에 ‘성폭력’을 검색해보면 수많은 광고·홍보 콘텐츠들이 뜬다. ‘성폭력 전담변호사’ ‘특화 티에프팀 구성’ ‘압도적 무혐의 승소 사례 다수’ 등 대부분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법적으로 ‘전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을 내세운다. 전담법인을 자처하는 사이트에선 ‘특화된 전문가’로서 자신들이 어떻게 무혐의·불송치·기소유예 등을 이끌어냈는지를 ‘성공 사례’로 제시한다. ‘억울함을 해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위의 의뢰인 후기도 달려 있다. 바야흐로 “가해자 중심의 성범죄 전담법인”의 전성시대다. <시장으로 간 성폭력>은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 ‘법시장’에 의존하게 된 현실을 비판하고, 그 배경을 깊숙이 따져보는 책이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인 지은이 김보화가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보완해서 단행본으로 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명예훼손 등 ‘역고소’가 빈번하게 제기되는 데 의문을 품었던 지은이는, 가해자에게 전문적인 법적 서비스를 해주는 ‘시장’의 존재를 인식한 뒤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고 한다. 성폭력 피해자, 여성운동단체 활동가, 변호사 등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고, 판결문과 법적 자료, 온라인 등의 매체에 드러난 담론을 분석해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성폭력 사건에서 법이 가해자 쪽으로 기우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지은이는 최근 ‘법시장화’라 부를 만한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여성운동은 성폭력에 대해 전반적인 공적인 제도 강화를 요구해왔지만 국가는 가해자 처벌 등 ‘엄벌주의’만을 강화해왔고, 이는 사법적 처리에 대한 의존도를 갈수록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사건에 견줘 성폭력 사건은 “현실과 괴리된 최협의설과 관행화된 감형,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신뢰하지 않는 통념, 무고에 대한 의심, 재판부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가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사건이 늘어나는 가운데, 법무법인이 개입해서 장사를 해볼 여지가 많은 영역인 셈이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성희롱·성폭력을 둘러싼 폭력적 구조와 치유 회복의 의미, 조직 내 성차별적 문화 등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들이 축소되고, 사건 해결의 절차와 내용이 사법화”되었다고 진단한다. 근원적 배경으로 “성별권력과 위계적·차별적 사회구조”는 다루지 않고 이를 법정 속 개인들 사이의 다툼으로 치환시키는 국가의 ‘신자유주의 통치 전략’을 짚어낸다.
강력범죄의 발생과 기소율, 구속률 현황. 성폭력 범죄의 경우 발생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지만 다른 범죄에 견줘 기소율, 구속률이 낮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휴머니스트 제공
성범죄 전담법인들이 내세우고 있는 ‘성공 사례’의 대표적인 구성과 내용. 휴머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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