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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오늘 밤 치킨은 나야 나”…황금 닭에 투영된 꿈과 도전

등록 2023-01-27 05:00수정 2023-01-27 11:01

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

천하제일 치킨쇼
이희정 지음, 김무연 그림 l 비룡소(2023)

2023년 새해 들어 우리나라 문화계 전반에 ‘슬램덩크’ 열풍이 거세다. 극장가는 물론이고 서점가도 아련한 옛 추억을 가지고 슬램덩크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슬램덩크 시리즈가 ‘점령’ 아니 ‘싹쓸이’했다.

슬램덩크 시리즈의 어마어마한 위세 가운데 어린이 책 한 권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가 있어 흥미롭다. 지난 1월 초에 출간된 <천하제일 치킨쇼>는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과 부모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종합베스트셀러 상위권 목록에 올라 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케이(K)푸드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치킨에 대한 애정이 책의 판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아울러 시나리오를 쓰는 방송 작가 출신 글 작가와 <똥볶이 할멈> 시리즈 그림으로 유명한 그림 작가의 협업이 재미 요소를 배가시켰다.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꿈과 자유’를 찾아가는 시골 닭의 여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천하제일 치킨쇼>는 황금 닭이 되기 위한 닭들의 살벌한 전쟁을 그린다. 철저하게 계산된 프로그램대로 운영되는 냠냠 양계장에서 자란 100마리 닭들이 엄격한 예선전을 거쳐 오디션에 참가한다. 닭들은 미각 테스트, 목청 테스트, 닭싸움, 외국어 능력 테스트 등을 거치면서 자신이 ‘슈퍼스타 케이(K)치킨’ 최고의 치킨이 될 자격이 있다며 선택해 달라고 어필한다. “픽미픽미 픽미업”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치킨쇼에 참가한 닭들은 결국 장렬하게 전사해 치킨이 될 운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최고의 맛과 기쁨을 선사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한 몸 바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오디션에는 시골 허름한 양계장에서 자랐지만 한 번도 황금 닭의 꿈을 포기해 본 적이 없는 ‘일공일호’가 101번째 마지막 후보로 참가한다.

황금 닭이 꿈인 일공일호와 다른 참가 닭들이 서로 경쟁하며 치킨의 세계를 들려주는 동안, 치킨왕이 꿈인 어린이 염유이가 천하제일 치킨쇼에 어린이 평가단으로 참가한다. 걸음마를 시작하자마자 “치이… 키이인…”을 외친 유이는 세상의 모든 치킨 맛을 섭렵한 치킨왕이 되길 꿈꾸며 오디션 심사위원이 된 것을 기뻐한다. 일공일호와 염유이 두 주인공은 눈부신 조명의 치킨쇼가 진행될수록 자신들이 품어왔던 꿈과 세상이 자신들에게 기대하는 모습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깨닫고,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어린이 책이 종종 어른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천하제일 치킨쇼>의 몇몇 문장이 그런 감정선을 쿡쿡 건드린다. “안심이나 가슴살은 맛없어. 근데 또 퍽퍽살이 없으면 쫄깃살이 그렇게 맛있는지 모를 거야. 때론 하기 싫은 일도 공평하게 해줘야 진짜로 좋아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어”, “보통 치킨은 뜨거워야 맛있지? 그런데 닭강정은 식어야 바삭하고 고소해. 세상에 정해진 일 따윈 없어. 섣불리 판단하고 낙심할 필요도 없지. 어떤 상황에 처했든 시간을 조금 두고 지켜봐. 슬픔은 꽁꽁 얼렸다가 천천히 녹여 먹고, 기쁨은 뜨겁게 튀겨서 후후 요란하게 먹고, 분노는 찬물에 식혀서 쪼끔만 먹는 게 좋아. 뭐든 체하지 않게.” 치킨에 비유한 인생 지혜와 꿈과 도전에 대한 질문은 웬만한 자기계발서의 울림을 능가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 대해 “자녀에게 사준 책이지만 부모가 읽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다”라는 평가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북칼럼니스트, BC에이전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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